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경영 승계는 시장에…

몇 년 전 뉴욕 월가의 한국 투자자들과 함께한 사석에서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SK처럼 경영권을 흔들수 있지 않은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삼성전자와 국민은행 등 한국의 우량주를 대량으로 사들인 펀드의 매니저들이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우리는 삼성전자에 투자해 많은 수익을 냈기 때문에 지금의 경영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기업 지배구조 사회적 이슈로 그의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삼성전자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단합해서 흔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종영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국정감사에 출두, 삼성전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최근 사회단체, 일부 언론, 정치인들이 삼성을 공격하는 데 대한 엄살로 치부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삼성 문제는 창업자 후손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게 옳은지 하는 지배구조에 있다. 눈을 미국으로 돌려보자. 주식시장이 발달하고 이사회 중심의 기업경영이 정착된 미국에서도 창업자 또는 그의 후손들이 경영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 미국 2위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자동차에는 창업자의 4대 후손이 회장이고 소매 체인점 월마트는 창업자의 큰 아들인 롭슨 월튼이 회장을 맡고 있다. 모토롤러는 창업자의 손자인 크리스토퍼 갤빈이 최고경영자(CEO)를 하고 의류 업체인 노스트롬스, 코카콜라에서도 창업자 패밀리가 경영에 간여한다. IBM에서 창업자 워트슨 가문의 지분은 극히 미미하지만 경영진이 인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뉴욕타임스는 슐츠버거 가문이 표결권을 장악하고 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뉴욕증시 블루칩 지수인 S&P500지수의 구성 회사의 3분의1이 창업자 또는 그의 후손들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S&P500지수 상장회사의 10년간 경영 실적을 분석해보면 대주주 경영회사의 매출 증가율이 23.4%인 데 비해 전문 경영인에 맡긴 회사는 10.8%였다. 주식투자율은 15.5%와 11.2%, 자산수익률에서는 5.4%와 4.1%로 거의 모든 경영지표에서 대주주가 경영을 책임진 회사의 실적이 전문 경영인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자 가문이 경영하는 회사가 이처럼 경영 실적이 좋은 것은 여러 요인이 있다. 첫째, 창업자 가족이 오랜 경험으로 사업 마인드가 형성돼 있고 둘째, 이들이 전문 경영인보다 의사결정 과정이 빠르다. 셋째, 창업자 가문의 경영자들은 종업원이 회사에 충성하도록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있고 넷째, 대주주 경영인들은 회사 이익을 배당에 충당하기보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도 전문 경영인과 창업자 가문의 경영권 분쟁이 자주 벌어져 뉴스가 되고 있다. 포드 가문은 포드자동차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문 경영인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10년을 싸워 몇 년 전에 경영을 맡게 됐고 PC 제작회사인 휴렛패커드에서는 창업자 후손인 휴렛 가문과 패커드 가문이 공동전선을 펴서 전문 경영인인 칼리피오리나를 몰아내려다 진 적이 있다. 회사가치 극대화차원 접근을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대우그룹이 회장 한 사람의 독단적 경영에 의존하다가 붕괴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문제의 해법을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누가 회사 경영의 책임을 맡는지의 문제는 시장 원리를 고려해 회사 가치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창업주 가족이 가문에서 경영 후계자를 찾으려면 그 자녀가 극심한 경쟁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 창업자 가문의 대주주들은 경영에 대한 자질과 성품을 철저히 검증해서 기업을 승계시킨다면 시장이 수용할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떠들 문제는 아니다. 아울러 시민단체들이 외국 투자자들에 손짓을 하며 국내 기업을 흔들어대는 것도 한국 경제를 위해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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