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기업의 3세 경영자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재량권보다는 금지된 조항이 더 많아야 건전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강직하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오너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태도는 칭찬받을 만 합니다. 오죽하면 과거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코지모 데 메디치도 ‘낮은 나귀를 타라’고 이야기했을까요.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열린 시대의 군중들은 그를 매우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여론을 통해 적극 연대하여 그를 견제하거나 몰아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늘 처신을 조심하는 3세 경영자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요즘 최고경영자들 사이에 인기인 SNS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도 안 쓴다고 했습니다. 항상 과도하게 남에게 노출되어 있을 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서슴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합니다.
어제 두산중공업의 회장이자 중앙대 이사장이었던 박용성 씨의 사퇴 해프닝도 그런 각도로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그는 존경받는 경영자였습니다. 조직관리력이 탁월하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거침없는 행보는 두산이 소비재 중심의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략적 변화 과정에서도 꽤 중요한 인자로 작용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입니다. ‘형제의 난’으로 그룹 전체가 시끄러울 때에도 중심을 잘 잡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대학 경영이 기업 경영처럼 되지 않자 성 마른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가장 고통스럽게 목을 쳐 주겠다’는 과거 11세기 일본 무사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잔인성을 발휘해서 천하통일을 했다거나 일국을 평정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오히려 반감만 사거나 민중으로부터 ‘폭군’이라고 비난받는 경우가 더 많았죠. 마찬가지로 대학 경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개개인의 생존권 문제를 걸고 넘어졌던 박 회장은 결국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그는 다른 보직에서도 스스로 사퇴해야 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간과했던 결과로 말입니다.
바야흐로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마치 ‘사퇴의 달’인 듯 마냥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래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사람들과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하는 사람들로 나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에 한 원로 정치인은 ‘권력은 허업’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했다가는 항상 뒤탈이 난다는 겁니다. 스스로의 힘과 재량권을 소비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가치를 위해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옛 어른들은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좋아했나 봅니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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