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중견기업 퍼주기 안된다] <2> 중견기업 목소리 커진 진짜 이유는

기업 쪼개기 막는 관계사제도로 수조원 혜택 끊기자 여론몰이<br>적용땐 즉시 중기 졸업 세제·조달시장 참여 등 지원 대상서 배제되자<br>성장 사다리론 내세워 관계기업제도 무력화

최병오(왼쪽 네번째)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지난 1월31일‘중견기업위원회 제17차 회의’ 에서 임기를 마친 이희상(〃세번째) 동아원그룹 회장의 후임으로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장으로 추대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상의


# 한때 4조원이나 되는 매출을 올리며 PC업계 대표적인 중견업체로 이름을 떨쳤던 삼보컴퓨터는 현재 중소기업 전용 조달시장에 참여 중이다. 이 회사가 중소기업만 들어가는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회사 쪼개기'. 지난해 삼보컴퓨터는 신설법인 'TG삼보'를 설립해 PC 제조업 등 관련 부문을 통째로 이관하는 꼼수를 써 중소기업 확인을 받았다.

지난 2011년 일부 중견기업의 편법적인 회사 쪼개기를 막기 위해 관계기업제도가 도입됐지만 삼보는 이 규정마저도 피해간 것. 관계기업제도는 쪼갠 두 회사를 합쳐 중소기업 여부를 따지는데 최대주주가 중소기업일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바로 삼보컴퓨터의 최대주주인 TG나래가 중소기업이었던 것.


# 중견 가구업체 리바트도 자회사 쏘피체를 차려 중소기업 전용 가구조달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리바트는 판로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기 전 쏘피체를 종업원 지주사로 전환, 퍼시스의 팀스와 달리 조달시장 퇴출을 면했다. 살아 남은 쏘피체는 올 초부터 3월까지 세 달 만에 360억여원의 물량을 계약하는 등 조달시장 선두권에 올랐다. 하지만 4월15일부터 한 달간 조달시장에서 위장 중소기업을 솎아내기 위한 실태조사를 벌인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쏘피체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삼보컴퓨터와 리바트는 위장 중소기업을 없애고 '피터팬신드롬'을 막으려는 관계기업제도를 무력화시킨 대표적인 중견기업들이다. 최근 중견기업 단체들은 이들 기업처럼 중소기업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아예 관련 법을 바꿔 관계기업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일제히 쏟아내고 있다. 관계기업제도가 성장 사다리의 걸림돌이라며 중견기업 단체들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는 것.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정책건의자료인 '중견기업의 4대 성장장애와 5대 기업활동 애로'를 내고 "관계기업제도가 중소기업 인수합병(M&A)을 저해한다"며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을 우호적으로 M&A할 경우 졸업 유예기간을 예외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중견기업연합회도 1일 열린 한정화 중소기업청장과의 간담회에서 "관계기업에 해당되는 기업들이 유예기간 없이 바로 중소기업을 졸업하게 돼 지원은 일시에 사라지고 규제는 증가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중견기업인들은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관련 법상의 지배 또는 종속관계 규정을 개선해 중견기업들의 애로를 해결해달라고 목청을 돋웠다.

기업 쪼개기를 통해 성장을 고의로 회피하는 '피터팬증후군'을 막는 게 목적인 관계기업제도가 거꾸로 중소기업들의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꺼리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 것. 이처럼 1~2년 전부터 중견기업 단체들이 하나로 뭉쳐 큰소리를 내고 있는 배경에는 위장 중소기업과 관계기업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관계기업제도란 지분비율에 따라 기업 규모를 합산해 중소기업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다. 이에 해당되는 중견기업 관계사들은 규모가 작다 해도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게 돼 정책자금 지원, 중소기업적합업종, 공공조달시장 참여 등 정책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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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가 시행된 것은 2011년. 2009년 규정이 만들어지고 2011년 시행까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관계기업제도는 2008년에 처음 입안돼 2009년 확정됐지만 시행에 앞서 관련 업계의 적응과 대비를 위해 충분한 기간을 두고 2011년부터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계기업제도 규정 신설 시기와 대한상의 중견기업위원회가 출범한 때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 중견기업들은 2008년부터 관계기업제도에 따라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끊기고 각종 세제 혜택 및 지원이 중단돼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려왔다. 이들의 조직적인 노력은 2011년 7월 중견기업 지원안을 담은 개정 산업발전법 발효로 일단 결실을 맺는다. 이제 남은 것은 관계기업제도.

실제로 이 제도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1,529개사가 중소기업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이 누렸던 정부 지원을 금액으로 따지면 수조원대가 된다. 결국 중견기업계는 '2010년으로의 회귀'를 집요하게 칭얼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중견기업계의 요구에 대해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중견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때로는 대기업, 때로는 중소기업의 지위를 누리며 성장해왔지만 최근 관계기업제도 등의 규제로 정부 지원 단절, 공공시장 참여 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성장 사다리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며 "다 큰 기업에 지원을 해주고 특혜를 주는 것은 성장 사다리가 아닌 썩은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중기청 등 정부의 시선도 냉정하다. 중기청 관계자는 "서로 간 사실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들이 중소기업 졸업을 하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계속 뻗어나간다면 모든 기업이 다 중소기업이 되지 않겠느냐"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중견기업들이 중소기업자 간 경쟁시장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조달시장에는 이보다 4배나 큰 비중소기업자 간 경쟁시장도 있으니 여기서 자유롭게 경쟁하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용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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