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펌 대표와의 '솔직토크'] 안종택 렉스 대표변호사



[로펌 대표와의 '솔직토크'] 안종택 렉스 대표변호사 "뇌물받은 정치인 유죄" 판결 이끌어내 김홍길기자 what@sed.co.kr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법무법인 렉스의 안종택(53ㆍ사시20회) 대표변호사는 첫 마디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어 얘기가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놓고 자랑할 만한 취미도 하나 없다고 자신을 한껏 낮췄다. 법조인연감에는 바둑이 취미로 나와 있는데, 이것도 "바둑을 즐겨서가 아니라 잘 해 보려고 써 놓은" 것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오래전 골프도 시작했지만, 거의 손을 놓다시피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테니스도 라켓과 가방만 사 놓고 지금까지 묵힐 정도로 별 특징적인 게 없다. 그는 스스로 "이것저것 많이 건드리기만 했지, 특별히 잘 하는 게 없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검찰시절 그는 일 잘하기로 소문나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고, 그가 맡은 사건은 판례로 정착될 정도였다. 그가 의사가 될 뻔하다 법조인이 된 사연, '유서대필' 사건으로 시민단체로부터 '나쁜 검사'로 오해받았던 사연 등은 그의 삶이 '드라마'였다는 것을 반증하고도 남는다. ◇렉스에서 새로운 인생 도전=그는 25년간의 검찰생활을 끝내고 변호사로 변신했다. 그리고 한달전 렉스에 합류했다. 왜 렉스였을까. 그는 렉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좋은 느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둥지인 렉스를 "작지만 강한 로펌"이라고 단언했다. "들어온 지 얼마 안됐지만, 오히려 한발짝 걸친 입장에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며 "렉스는 작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춘 로펌"이라고 강조했다. 렉스의 현재 규모보다는 미래의 성장가능성을 더 눈여겨 봤다는 설명이다. 그의 렉스 예찬론은 이어졌다. "렉스는 누가 주인이다 하는 지배자 개념이 없고 구성원간 잡음이 없고 단합이 잘 되기로 소문난 곳"이라며 "앞으로 몸집을 좀더 키우고 실력을 더 갖추면 메이저 로펌과 경쟁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는 메이저 로펌과 경쟁하게 될 시기를 "2~3년"이라고 잘라말했다. 실제 렉스는 최근 법무법인 하우림과 통합하는 등 메이저 로펌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가지 더. 그의 검찰시절 화려한 수사 결과를 놓고 봐도 누구라도 그를 탐냈을 것 같다. 그는 1990년 전후 대규모 폭력시위 사건을 수사하면서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배후인물을 현장 폭력시위자와 함께 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집단 및 조직범죄나 다중범죄 진압에 큰 효력을 발휘한 것은 유명하다. 대검 중수부 과장 때는 한보사건을 수사하면서 반부패 수사에 큰 도움이 되는 판례를 남겼다. 포괄적 직무관련성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정치인의 뇌물죄를 기소해 유죄선고를 이끌어 낸 것이다. 검사에서 변호사로 적응해 가고 있는 안 대표는 "렉스는 인생의 또 다른 선물"이라며 "변호사로서 또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오해 사기도= 안 대표는 시민단체들로부터 '나쁜 검사'라는 오해도 샀다. 이른바 유서대필사건 때문이다. 아직도 인터넷 네이버의 검색창에 '유서대필' 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어김없이 안 대표가 뜬다. 한 시민단체가 안 대표가 공안검사 시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했다며 비난하는 내용인데, 사실은 틀린 내용이다. 안 대표는 당시 공안부 수석검사였다. 유서대필 사건은 강력부가 중심이 돼 수사 지휘했는데, 안 대표는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거나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그 때 강력부에 파견을 나간 것이 아니라 공안부에서 일을 했고 유서대필 사건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유서대필 부분이 아닌, 사건과 연관된 강모씨가 이적단체와 관련된 활동을 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으로 사후에 추가 기소했는데 언론 등에는 안 대표가 강력부에 파견돼 유서대필사건을 직접 지휘한 것처럼 보도된 것이다. 안 대표는 당시 "애들도 아빠가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했냐고 물어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안 대표는 사실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확정판결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굳이 항변하면 마치 그 사건이 잘못된 것처럼 오해하는 등 또 다른 말을이 나올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억울하지만 지켜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그 사건 수사에 공안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한때 의사가 될 뻔 했던 사연= 울산 산골의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자란 안 대표는 의사가 될 뻔도 했다. 부모님은 안 대표가 어릴 적부터 돈 잘 버는 의사나 한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초등학교 5·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판검사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자 안 대표는 법대진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지원을 결정하던 고등학교 3학년 말. 당시 담임선생님은 안 대표에게 "의대를 쓰라. 그렇지 않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겁을 주면서까지 법대 진학을 뜯어 말렸다. 안 대표는 결국 법대를 썼고 합격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담임 선생님이 의대 진학을 그토록 집요하게 권유한 것은 전날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와 "종택이는 절대 법대에 보내지 말고 의대나 한의대에 보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안 대표는 "아버지는 고시에 실패해 낭인처럼 사는 주위 친인척들을 보고는 장래가 불확실한 고시보다는 의사공부를 시키려 하셨던 것 같다"며 자식을 위한 '배려'에 감사해 했다. 안 대표가 법대를 고집하지 않고 의대를 진학했다면 또 다른 삶이 펼쳐졌을 법도 하다. 안 대표는 그러나 "의사는 생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고, 변호사는 사회적인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둘 다 어려운 직업임에는 틀림없다"며 "선택에 후회는 않는다"고 말했다. ◇엄하면서도 낙천적인 CEO=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엄해 보인다. 어린 시절 유교적 가풍의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 때문일까. 그러나 그는 좀체 겉으로 화를 내는 법이 없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대장부'라는 어릴 적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안 대표는 "할아버지는 천자문을 읽게 하는 등 한문을 가르치면서, 늘 아무 곳에서나 화내지 말고 버럭버럭 집어 던지지 말라고 가르쳤다"며 "공직생활에선 더욱 그렇게 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굉장히 낙천적이다. 그가 좋아하는 글귀도 스펜서 존슨이 쓴 책 '선물(The Present)'에 나오는 'Present is the best present(현재가 최고의 선물이다)' 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게 안 대표의 삶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에 변호사로서 변신하는 과정에 어려움도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한번은 지인이 부동산 관련 사건을 물어보길래 '친절히' 상담해 줬는데, 그 뒤로는 전화가 오지 않더라는 것. 안 대표는 속으로 '나에게 사건을 맡기겠지' 했는데, 지인은 안 대표의 자문으로 이미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자 사건을 맡기지는 않은 것이다. 이때부터 안 대표는 전화상담이 아닌 직접 방문상담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문상담의 경우에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선임 여부를 판단하도록 맡기니까 다시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안 대표는 "변호사 적응이 안돼 겪고 있는 실수중 하나"라며 크게 웃었다. 그는 별다른 취미가 없지만, 최근에 산보에 재미를 들였다. 산보시간은 보통 1~2시간. 그는 요즘은 시간이 없어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산보를 한다고 한다. 그는 "동네 한바뀌 돌면 1~2시간은 훌쩍 지난다"며 기자에게 도보를 권했다. ◇"변호사는 탐욕에서 자유로워야"= 그는 "변호사는 탐욕의 논리를 몸소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로펌들이 상업적 이익에만 매몰돼 있는 국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단호해 보인다. 안 대표는 "변호사는 영화 '어퓨 굿맨(A few good man)'의 주인공 변호사나 '드라큐라 백작'의 조나단 하커 변호사처럼 범죄적 권력이나 사회를 고발ㆍ응징하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는 정의의 수호자, 인권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며 "변호사 개인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처럼 악마의 대변자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안 변호사는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비판한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변호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인지 그는 요즘 '담박영정(澹泊寧靜)'이라는 글귀가 더욱 생각난다고 했다. 항상 마음을 깨끗하고 평온하게 하라는 말인데, 삼고초려로 유명한 유비가 제갈량을 2번째 찾아갔을 때 제갈량의 초당 벽에 '담박이명지 영정이치원(澹泊以明志 寧靜以致遠)'이란 글귀가 붙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는 "욕심 내지 말고 마음 깨끗하게, 평상심을 잊지 말고 살자는 뜻"이라며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검찰 생활중 잘했다는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았던 것 같다"며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잘못해서 마음 상하게 했다면, 이 자리를 빌어 한꺼번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새 삶을 사는 안 대표. 그에게는 여전히 '어퓨굿맨'과 '데블스 에드버킷' 사이를 고민하는 순수함이 남아 있다. ■ 법무법인 렉스는 기업·형사분야서 두각… 하우림과 합병통해 '제2도약' 모색 법무법인 렉스는 2006년 4월 1일 송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던 법무법인 장한과 기업자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던 법률사무소 장원,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중국법률자문회사인 북경국연자순유한공사가 합병해 출범한 중견 로펌이다. 최근에는 기업ㆍ형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법무법인 하우림과 전격 합병을 선언해 제2의 도약을 준비중이다. 현재 강현중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와 박태종 전 대구지검장이 고문변호사로 활동중이다. 우의형 전 서울행정법원장과 김동윤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공동대표변호사를 맡고 있으며 하우림과의 합병으로 조대환 대표변호사가 합류했다. 이헌섭 김우찬 권오영 한명섭 최진영 변호사 등 법원ㆍ검찰에서 실무능력을 검증받은 변호사들과 미국ㆍ중국통의 기업자문 전문 변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 약력 ▦1955년 울산 출생 ▦1973년 (부산)경남고등학교 졸업 ▦1977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0년 육군 법무관 ▦1983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 ▦1986년 수원지검 여주지청 검사 ▦1987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1991년 서울지검 검사(고등검찰관) ▦2000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06년 법무부 감찰관 ▦2007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장 ▦2008년 (현) 법무법인 렉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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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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