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8월 31일] 직책정년제와 천막 농성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에 들어서면 로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천막이 바로 눈에 띈다. 거래소 양대 노조 가운데 소수파(옛 코스닥증권, 코스닥위원회 출신)로 분류되는 통합노조가 설치한 것이다. 이 곳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노동가요 등 다양한 음악이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다. 일부 노조원들은 천막 안과 밖에서 책자를 읽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중심이라는 거래소 로비에서 이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게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천막이 등장하게 된 발단은 거래소가 고비용ㆍ저효율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올해 초 도입한 직책정년제 시행. 팀장은 10년, 부서장은 5년에 한해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제도의 핵심이다. 첫 케이스로 모두 9명의 부서장 및 팀장에게 보직을 주지 않자 통합노조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보직 해임된 부서장 대부분이 통합노조원으로 경영진이 특정 기관(옛 증권거래소) 출신을 편드는 차별적인 인사를 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지난 27일에는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 90%가 넘는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결의했다”며 “직책정년제 관련 단체교섭 요구를 사측이 거부할 경우 이사장 등의 퇴진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통합노조의 주장은 명백한 왜곡’이라며 맞서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보직 해임된 부서장 3명 가운데 1명은 원직에 복귀했고 이들과 함께 해임된 팀장 6명은 통합노조가 아니라 모두 단일노조(옛 증권거래소) 출신”이라고 반박했다. 원칙대로 처리한 만큼 직책정년제와 관련된 논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거래소의 여의도 사옥 안팎은 자회사인 코스콤의 비정규직 문제로 촉발된 시위와 농성으로 2007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평온을 되찾은 지 겨우 6개월 만에 다시, 그것도 로비 중앙에서 투쟁가와 구호를 듣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더구나 같은 회사 동료들의 지지도 얻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는 농성은 노조 집행부 중심의 ‘그들만의 투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조는 로비를 점령하고 벌이는 천막 농성이 왜 외부의 관심은 물론이고 동료들에게도 열렬한 응원을 받지 못하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사측은 원칙은 고수하되 유연성을 갖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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