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규 환경부장관
3차례 입법 실패 끝에 통과
환경피해 기업에 배상책임 부과
기업가치 상승, 환경정의 구현되길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경북 구미시 소재 한 전자회사가 지난 1991년 3월 14일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유발한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이 대표적이다. 두 번 다 페놀원액 저장탱크와 연결된 파이프의 파열로 인해 버리려는 폐수가 아닌 귀중한 원료 페놀이 유출돼 발생한 사건들이었다. 첫 번째 사고 후 영업정지 상태에 있으면서 수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4월 19일 조업을 재개했지만 3일 만에 파이프 파열이 재발해 두 번째 사고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 파장은 매우 컸다. 250만 명이 살던 대구에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임산부 유산 등 피해신고 1만 3,000여 건, 피해신고액이 170여억 원에 달했다. 당시 환경처 장관뿐 아니라 차관, 문제의 전자회사 회장이 동반 퇴진했다. 이 사건은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제정(1991년 5월 31일)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2년 구미 불산사고까지 20여 년 동안에도 환경오염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왜 페놀사고의 교훈을 이토록 살리지 못하는 걸까.
환경오염피해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정보와 전문성 부족으로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어 구상권 행사가 쉽지 않다. 절대적 ‘을’인 피해자를 원인자와 대등한 지위로 올려주는 법적 장치가 없으면 환경오염사고를 방지하기 어렵다.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 등 공해병이 많았던 일본은 항구도시 욧가이치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장들이 1956년부터 밀려들면서 다량 배출된 아황산가스로 천식 등 호흡기질환이 발병했고 1972년 법원에서 최종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듬해인 1973년에 ‘공해건강피해보상법’을 제정해 오염원인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의료비, 생계비 등의 지급과 아울러 피해를 보상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오염피해를 유발한 기업에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환경책임법’의 입법시도가 제13대 국회부터 3차례나 있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 등으로 인해 매번 국회 회기가 만료되면서 심의 한번 없이 자동 폐기되곤 했다. 박근혜 정부는 ‘환경정의’의 구현을 위해 입법을 공약했고 지난 2012년 9월의 ‘구미 불산누출 사고’를 발판삼아 입법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에서 여야불문 재석의원 205명 만장일치로 ‘환경오염피해의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마침내 제정된 것이다. 이 법은 원인자의 무과실 책임, 오염-피해 인과관계 추정, 피해자의 대 원인자 정보청구권, 환경책임보험 의무가입화 등이 핵심이며 내년 1월 시행된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새로운 삶은 폐허에서 피어난다’고 했는데 구미 환경오염 사고라는 폐허에서 법이 피어난 셈이다.
피해자는 앞으로 원인자(사업자)에게 환경관리 정보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업자는 제공해야 한다. 만일 제공하지 아니하거나 못하면 환경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법원에서 추정할 수 있다. 이 법은 사업자를 보호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배상 상한액을 설정했고, 보험의 도움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임보험제도는 신속하고도 실효적인 배상과 함께 기업의 경영지속을 담보해줄 것이다. 나아가 보험료율 책정제도가 진화하면서 보험제도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환경책임법 시대’를 앞두고 있다. 바야흐로 자율 환경관리가 기업의 미래가치와 위험도를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 상승과 환경정의의 구현으로 이어져 모두가 승자되는 미래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