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核불능화'까지 대북제재 단계적 해제
■ 北, 핵프로그램 신고서 제출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단으로 무역장벽 완화對공산국가 제재등 다른조치는 그대로 유지"한반도 완전 비핵화 이제부터 시작" 지배적
베이징=문성진특파원 hnsj@sed.co.kr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
북한이 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출범 후 8년간 지속돼온 북핵 문제는 클라이맥스를 넘어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핵 개발을 빌미로 걸고 있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킴에 따라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 신고에 이어 영변 냉각탑 폭파를 CNN을 통해 노출시켜 핵 개발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연출함으로써 미국과의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핵 신고를 계기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면하고 당장 시급한 경제난 해결에 도움을 얻게 됐지만 미국이 거머쥐고 있는 경제제재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핵 신고서에 대한 완전한 검증과 핵 폐기, 불능화라는 3단계 작업이 이뤄질 때까지 북한에 대한 완전한 경제제재 해제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핵 신고서 제출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단계적(step-by-step)'이면서 동시에 점진적인(incremental) 과정"이라며 "북한이 더 이상 테러지원국 명단에 오르지 않게 되고 적성국교역법 제재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유엔 결의안과 양자 간 조치에 따라 경제 및 기타 여러 가지 제재하에 놓이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 신고로 미국이 취할 조치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이다. 이는 지난해 2ㆍ13 합의와 10ㆍ3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사항이다.
미국이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면 북한은 지난 1950년 6ㆍ25 발발 이후 취하기 시작된 미국의 포괄적 제재에서 첫 단추를 푸는 셈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의 해제 조치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얻을 것으로 관측된다.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북한에 대한 상업물자 수출 전면 금지, 군수물자 수출 금지, 최혜국 대우와 특혜관세 부여 금지 등 무역장벽이 상당 수준 완화된다.
스인훙(時殷弘)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 교수는 "중국 등 동북아 국가들은 근대 동북아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극복할 때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면서 "그 바탕 위에 6자회담과 같은 다자 간 대화나 양자 대화의 기제를 적절히 활용할 때 동북아 평화 체제를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의 경제제재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미국의 대공산국가 제재 등 다른 조치를 그대로 적용 받게 되고, 따라서 테러지원국 해제에 따른 효과는 단기적이고 부분적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에 적용하는 정상교역관계(NTR), 일반특혜관세제도(GSP) 배제 조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미국 내 동결돼 있는 북한의 해외자산 3,170만달러도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신고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는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신고서에 담긴 플루토늄 생산량과 사용처 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나올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차기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 신고에 따른 철저한 검증 및 폐기 방법을 둘러싸고 각국의 본격적인 신경전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치바오량(戚保良)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한반도연구실 주임은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신고서가 미국이 만족할 만큼 완전하냐는 것"이라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시각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핵 신고를 계기로 북한은 서방세계와의 접근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핵무기 폐기와 관련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경우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도 이 같은 서방진영의 분위기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