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시장의 흐름과 전망을 짚어내 사업을 다각화하고 새로운 수주 전략을 짜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익성이 높다면 공종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입찰에 들어가는 선진업체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성환 SHBC 이사는 "금융위기 후 시작된 국내 건설업계 해외건설 부문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이사는 30여년 동안 해외건설 시장에서 활동한 이 분야 전문가다. 1981년 SK건설에 입사한 후 2004년 말 중동지사장을 끝으로 퇴임할 때까지 줄곧 해외파트에서 근무했다. 2005년 쿠웨이트의 플랜트 기자재 업체 SHBC의 사업개발담당 이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열어 중동 건설시장의 생생한 정보를 국내에 전하고 있다. 그를 지난 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조 이사는 "10여년 동안 중동에서 근무하며 국내 EPC업체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어왔는지, 또 유럽 등 선진업체와는 어떤 전략적 차이가 있었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선 2008년 하반기 발발한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기가 극도로 위축됐던 2009년부터의 수주 전략이 화근이었다고 진단했다. "금융위기 후에도 중동에서의 발주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유럽이나 일본 EPC업체는 몸을 사렸습니다. 웬만큼 마진이 확보되지 않는 물량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국내 업체는 달랐습니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아 중동의 플랜트 물량을 독식하다시피 했습니다."
역량을 초과하는 물량을 따내면서 국내 업체는 인력을 급격히 늘리는 등 사세까지 키워나갔다. 하지만 이 선택이 독이 됐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물론 전문성도 떨어지는 인력이 대형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당연히 수행과정에서 잦은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공기 지연으로 이어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이후에는 급격히 불어난 인력을 놀릴 수 없어 수익을 포기하고 일감을 따오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조 이사는 국내 대형건설사가 하루빨리 장기적인 밑그림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낸 후 어떤 수주 전략을 짜야 하는지 판단하는 노하우가 해외 선진업체에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업체 간의 극심한 과당경쟁을 해소할 수 있는 묘책을 업체들이 스스로 짜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조 이사는 또 "사업다각화와 규모의 경제로 경쟁력을 높인 미국의 벡텔(Bechtel)과 프랑스의 테크닙(Technip) 같은 전천후 플레이어들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육상과 해양 플랜트는 물론 공정설계와 프로젝트 관리 등 전분야를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력 확보를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가 도약의 발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