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긴급 체포하면서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이 재차 불거지자 재계가 `정치자금 불똥`을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이번 파장이 지난 2000년 4.13 총선 당시 여당의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로 확대될 경우 삼성, LG 등 여타 대기업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어서 해외신인도 관리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이번 파문이 투자심리 등 경기회복을 위한 경영활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사태 전개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 대북사업 차질 우려= 현대는 고 정몽헌 회장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이번 비자금 파문이 터져 난감한 모습이다. 특히 정치권의 공방이 확산될 경우 가뜩이나 위축된 대북사업에 다시 한번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검찰수사 상황과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며 “다만 비자금 관련 수사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도 “비자금 문제는 대북송금 사건과 별개의 사안으로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서도 “혹시라도 이 일이 대북사업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현대아산은 또 전날 함승희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정 회장에 대한 검찰의 가혹수사` 문제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는 듯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재계, 불통 튈까 긴장 또 긴장= 삼성ㆍLG 등은 다른 기업들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자금 고해성사` 발언,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200억원 정치자금 모금` 등 정치자금 파문이 잇달아 터지는 데 내심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여타 기업들은 일단 “현대 비자금 조성은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거리를 두면서 총선이나 대선 때 정치자금을 공동으로 모금한 적이 없으며 정당한 절차에 따라 돈을 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자금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비자금 조성, 정경유착 의혹 등이 다시 불거질 경우 기업 투명성과 신뢰도에 커다란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일 본지가 창간 기획으로 국내 200대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23%가 `친분 관계`나 `일종의 보험 성격` 등을 이유로 정치 자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자금이 본격적인 문제로 불거지면 불똥이 튈만한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이석영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이에 대해 “과거 관행이었던 정치자금 헌금 문제가 또 다시 재계를 얽어 매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 일선 기업이 국제 경쟁력 강화와 수출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