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3일]<1438> 여객선 US호

1952년 7월3일, 뉴욕항. 독립 176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어수선한 항구에서 길이 301.8m짜리 대형 여객선이 부두를 빠져나왔다. 선명 유나이티드스테이츠. 순톤수 5만3,330톤으로 미국 여객선 가운데 최대였다. 승객 2,000여명과 승무원 900명을 태운 US호는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서양 횡단에 걸린 시간이 3일 10시간40분. 평균 시속 35.59노트(약 66㎞)로 군함보다도 빨랐다. 긴급한 경우에만 속도를 내는 군함과 달리 US호는 80시간이 넘도록 최고 속도로 내달렸다. 공식 발표된 최고 시속은 39노트였지만 8개 보일러 가운데 6개만 때서 나온 결과. 24만1,000마력의 증기 터빈을 총가동하면 44노트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1970년대까지 비밀로 부쳐졌다. 고성능이 비밀로 취급된 이유는 군사용이었기 때문. 유사시 1만5,000명을 분쟁지역으로 급파할 수 있는 수송함이 필요했으나 유지비용에 고민하던 미 해군은 ‘평상시 민간 여객선, 전시 수송함’에서 대안을 찾았다. 건조비용 7,800만달러 중 5,000만달러를 해군이 부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US호는 상업운행 초기에 대박을 터뜨렸으나 바로 경쟁력을 잃었다. 제트 여객기의 일반화로 초고속 여객선의 설 자리가 없어진 탓이다. 배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쌓이는 누적적자에 선주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US호의 해외 매각을 모색했으나 끝내 좌절됐다. 유사시 수송함에 대한 미련과 초고속 엔진의 기밀유출을 우려한 미 해군이 번번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1969년부터 가동을 멈춘 US호는 필라델피아항에 방치돼 녹슬어가는 신세다. 한때 미국의 영광을 상징했던 US호에는 이런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시대를 뛰어넘은 걸작인 동시에 냉전이 빚어낸 값 비싼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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