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3일] 레오나드 제롬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뭘 할까. 집 사고 땅 사고 원 없이 써도 남으면? 십중팔구 인정받고 싶어진다. 19세기 미국 졸부들이 딱 그랬다. 유럽 명문가와 혼맥으로 ‘고귀한 신분’을 확인한 대표적인 사례는 레오나드 제롬(L Jeromeㆍ1817~1891.3.3).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외할아버지다. 뉴욕의 거리와 공원에 이름이 남아 있는 제롬은 철도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업가. 작전세력으로도 유명하다. 특기는 매도시점 파악. 철도 투기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1857년 주가 대폭락에서도 보유주를 최고가에 처분, 차익을 고스란히 지켰다. 제롬은 주식으로 번 돈을 마음껏 썼다. 파티를 열어 여자들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팔찌를 선사하고 전용 경마장도 지었다. 고가의 경주마가 끄는 마차를 몰아 센트럴파크를 질주하는가 하면 호화 요트를 사들였다. 미국요트협회도 창립했다. 파리에 머물던 딸 제시 제롬이 영국 귀족 랜돌프 처칠을 만난 것도 요트클럽에서다. 요즘 가치로 250만달러의 지참금를 싸 들고 결혼한 제시가 속도위반으로 낳은 아이가 윈스턴 처칠. 외조부와 달리 처칠은 주식과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영국 재무 장관을 막 마친 1929년 9월 미국을 방문한 처칠은 강연료로 받은 2만달러를 뉴욕증시에 투자해 날렸다. 세계대공황 직전 끝물을 탄 것. 깡통 차지 않은 게 다행이다. 처칠의 손해는 조상의 이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8대 조모인 말로보 공작부인(사라 처칠)은 영국 최초의 투기광풍기인 1720년 주식을 상투에서 팔아 10만파운드(요즘 돈 약 2,150억원)를 번 초특급 투기꾼. ‘18세기 영국 큰손과 19세기 미국의 작전세력’은 대정치인이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20세기의 후손을 기대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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