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1995년과 2012년의 굴업도


제대 후 기자가 되겠다며 이슈를 꼼꼼하게 챙기던 지난 1995년. 서해의 한 외딴 섬은 빼놓을 수 없었다.

정부가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후보지로 선정했는데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밀어붙이기가 문제였다. 캠퍼스에는 반대 서명이 있었고 뉴스에도 등장했다. 환경 단체들은 방사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위기가 고조됐지만 사태는 다소 엉뚱하게 끝났다. 활성단층이 발견돼 안정성이 문제가 되자 정부 스스로 계획을 접은 것이다.


다시 그 섬이 이슈가 되고 있다.

섬의 98% 이상을 사들인 한 대기업이 섬 전체를 깎아 골프장 등을 포함한 고급 리조트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업을 포기하는 듯했던 그 회사는 지난해 다시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땅한 생계거리가 없는 주민 다수는 개발에 우호적이다. 세수가 늘어나는 지자체도 그렇다. 하지만 일부 주민과 환경ㆍ시민단체는 여전히 개발 불가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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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옹진군 굴업도 얘기다.

얼마 전 아이와 일곱 집에 10여명이 사는 작은 섬, 굴업도에 갔다. 배 타는 시간만 3시간에 달했지만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는 짐을 풀자마자 어디서 생기가 생겼는지 바닷가로 달음박질한다. 조개 껍데기를 줍고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게를 잡겠다고 구멍을 파헤친다.

대기업은 철조망을 치고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며 경고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철조망에 길을 냈다. 그들을 따라 언덕에 올랐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우리를 맞는다. 개머리 초지다.

길을 되돌아가면 목기미 사빈이 있다. 섬 중간이 잘록한 데 모래톱만으로 이뤄져 있다. 그 곳을 지나자 무너진 집, 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이제 동식물의 차지가 됐다.

환경단체들은 멸종 위기종이 살고 있다며 굴업도를 살려야 한다고 한다. 개발의 필요성에도 수긍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옳으니 그르니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전망이 트인 산중턱 언덕에 올라섰다. 감탄사가 절로 난다. 아. 대한민국에 이런 곳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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