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외상공화국

해마다 12월초면 확정되는 경영계획을 아직까지 못 짠 회사가 있다. 이유는 사내 분파 싸움과 감투경쟁때문. 회사사정이 어렵자 빚을 마구잡이로 쓰자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 이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까.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국회와 정부가 하는 일이 꼭 이런 꼴이다. 아무리 늦어도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5일이면 확정됐어야 할 예산안 의결이 정파간 갈등으로 예결위 자체가 공전된 데다 계수조정소위원장직을 둘러싼 대립으로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잿밥 때문에 염불은 뒷전으로 비켜난 꼴이다. 국회 탓을 하는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나라살림 살펴보면 `외상공화국`이라는 느낌이다. 재정적자가 그렇고, 공적자금 상환연기가 그렇다. 정부가 최근 밝힌 대로 내년 예산을 3조원 증액 편성할 경우 적자재정이 고착화, 구조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매년 2조원씩 갚아나가기로 했던 공적자금도 상환일정을 연기시켰다. 정부가 과연 미래를 생각하는지가 의심날 정도다. 공전하는 국회와 적자재정을 서슴지 않는 정부 때문에 야기될 부작용은 고스란히 후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후손들이 져야 할 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지지부진하고 개혁적인 조세정책은 선거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선심공세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각종 비과세와 감면조치를 최대한 축소해 조세형평성을 높이고 세수(稅收)를 증대시키겠다는 정부의 원칙도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올해 조세감면액이 17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비과세가 얼마나 방만하게 허용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세입이 부실해지면 국가사업이 흔들리고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내일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눈앞의 표 계산과 정치적 이해 득실, 업무 편의주의만 있을 뿐이다. 흔들리는 건전재정과 조금씩 쌓여가는 조세예외 규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국민성이 괜한 말은 아닌 듯 싶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돌아간다. 우리는 `후손을 착취한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임석훈 경제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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