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이익을 기대하는 섬유시장 개방에 대해 미국이 전면 유보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섬유에 대해 최장 10년의 관세철폐 기간을 제시하면서도 민감품목 전부를 아예 관세철폐 예외로 분류하고 엄격한 원산지 기준인 ‘얀 포워드(Yarn Forward)’를 유지하기로 했다. 또 특별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권) 설치 요구마저 계속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3일 “미국은 지난 8월 중순 제시한 개방안(양허안)에서 1,592개 섬유 품목 중 60~70%를 관세철폐 예외인 ‘기타(Undefined)’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관세철폐 예외로 한 60~70% 품목은 우리가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400여 의류ㆍ직물 품목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다”며 “미 측이 섬유시장 개방을 전면 봉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섬유 관세철폐 기간을 ‘즉시-3년-5년-10년-기타’로 제시했는데 기타는 관세를 철폐하지 않고 개방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하거나 관세 일부 감축, 저율관세할당(TRQ) 등이 적용되는 항목이다.
미국은 이어 관세(가중평균 관세율 13.1%)와 함께 양대 시장 장벽인 엄격한 원산지 기준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미 측은 섬유 제품의 원료인 실 등도 원산지 국가에서 생산돼야 원산지를 인정해주는 얀 포워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사 대부분을 중국ㆍ동남아에서 생산 혹은 수입해 직물 및 의류를 가공 생산하고 있어 얀 포워드가 유지되면 대미 섬유 수출품 대부분이 FTA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국내 섬유업계 연합체인 섬유산업연합회는 한미 FTA로 미국 관세가 철폐될 경우 2억달러가량의 수출 증대가 예상되고 얀 포워드가 폐지 또는 완화되면 2억~3억달러의 추가 수출증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국내 섬유업계는 한미 FTA에서 아무런 실익도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더욱이 관세철폐 예외와 원산지 기준을 강화하면서 섬유 부문에 특별 세이프가드를 설치하자는 요구도 계속했다. 특별 세이프가드는 일시적으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관세를 철폐하지 않으면 특별 세이프가드는 요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미국이 섬유시장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동원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미 측의 초(超)보수적인 섬유 양허안은 농산물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