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아,외길 53년의 좌초/신상석 국차장 겸 정경부장(데스크칼럼)

◎국민이 주인인 민족기업 신화/정책부재로 끝내 무너지는가/회생위한 정부결단 절실민족기업 기아호가 좌초됐다. 부도방지협약대상기업으로 지정돼 사실상 부도가 난 셈이다. 바퀴만들기 외길 53년에 대한 우리경제의 냉랭한 대접(?)이다. 기아그룹은 자산순위로 국내 8대 재벌이다. 그러나 다른 재벌과는 달리 자동차만 만들어내는 전문그룹이다. 지난 44년전 순수민족자본으로 두바퀴의 자전거만들기로 출범, 세바퀴·네 바퀴의 자동차를 만들어내면서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민족기업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이제 해외에 10개 현지법인을 설립, 세계적 자동차업체로의 도약 시점에서 좌초했다. 기아는 또 전문경영인이 책임을 맡고 있는 기업이다. 최고책임자인 회장에서 부터 말단직원까지 회사의 소유권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80년 경영위기때는 상하가 똘똘 뭉쳐 봉고신화를 창조해 오늘의 터전을 닦아놓기도 했다. 전문경영인으로 회장자리에 오른 김선홍씨는 한때 미크라이슬러자동차회사를 중흥시킨 아이아코카회장과 비유되기도 했다. 그는 전문경영인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가 기업부실의 책임자가 되고 말았다. 기아는 주식분산이 가장 잘된 기업이다.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는 물론 없다. 외국합작선 말고는 5%가 넘는 대주주도 없다. 대부분의 주식이 종업원과 일반투자자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이 때문에 기아는 국민기업이다. 기아의 침몰은 곧 국민기업의 몰락이다. 기아는 우리경제가 지향하는 기업의 모델이요, 이상이다. 우리정부의 기업정책은 업종의 전문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주식 분산이다. 기업의 경제력집중이 심각해진 80년대 중반부터 이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그러나 오히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 심화되고 말았다. 우리경제가 당면하고 앞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중대 과제다. 기아는 이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기아는 재벌이라고 하지만 18개의 계열기업이 대부분 자동차만들기를 지원하기 위한 회사다. 자동차생산과 관련된 회사만 육성해온 것이다. 다른 재벌들이 자금파이프로 활용하는 그 흔한 증권사나 투금사, 보험회사도 없다. 이 때문에 오늘의 위기를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재벌기업처럼 문어발 확장을 하지않았기 때문이란 의미도된다. 물론 기아의 경영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공급과잉에 내수의 침체와 수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고 국내외 과잉투자로 판매가 부진했다. 이 때문에 과당판매경쟁이 경영을 악화시켰다. 또 기아특수강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도 경영악화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기아만이 이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 극심한 불황경제에서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맞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쁘지도 않다.기아보다 재무구조가 더 취약한 재벌기업도 많다. 삼성보고서 파문으로 촉발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작전에 말려들어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다. 기아의 좌초는 정부의 산업정책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정부정책에 딱 맞아 떨어지고 국민정서에도 들어맞는 기업이 생존하기 어려운 우리 경제풍토를 정부가 조성했다. 앞으로 재벌정책이 궁금해진다. 이번 사태로 업종전문화와 전문경영인체제 및 소유분산은 문제가 있으니 포기하고 문어발확장과 선단식경영을 권할 것인가. 정부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이번 사태를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차원에서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방치하다 오늘의 국가적 재앙을 가져오게 했다. 이번 사태는 회복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연쇄부도로 인한 금융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뒷전으로는 별짓 다하면서 겉으로는 민간 자율을 내세우며 뒷짐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민간자율을 존중하는 미국도 기간산업이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개입한다. 지난 80년 크라이슬러자동차사가 경영난에 직면했을 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15억달러의 지급 보증을 서 이 회사가 자금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정부의 결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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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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