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AI 확산 비상] 정치권 선심성 예산 챙기기에 예비비 깎여 … 이러다간 추경 불가피

■ 정책비상금 실태는

재해대책용 지출 매년 늘어나는데 편성 억눌러

피해규모 커지면 빚내서 모자라는 돈 보충해야


전북 고창과 부안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엿보이면서 정부의 대응 예산 확보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불의의 재난·재해가 빈번해지면서 피해보상·사후복구 등에 소요되는 예산수요는 최근 수년간 급증하는데 막상 돈줄이 될 정부 비상금(예비비 예산)은 국회의 과도한 견제로 억제되고 있는 탓이다. 정치권이 지역구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정작 재난 등을 위해 대비해야 할 예비비를 깎고 나선 것이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재해대책용으로 집행한 예비비 규모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2008년 재해대책용 예비비 지출액은 510억원에 그쳤으나 이듬해에는 3,484억원으로 늘었고 2010년 8,571억원으로 폭증하더니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1조원대로 올라섰다. 이 같은 수요증가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재해대책용 예비비 편성은 국회에 막혀 강하게 억제되는 형편이다. 2012년 정부 예산에서 편성됐던 재해대책용 예비비는 1조2,000억원이었는데 국회가 지난해 이를 1조1,000억원으로 삭감한 것이다. 그나마 올해에는 정부가 국회에 사정해 삭감을 겨우 피할 수 있지만 여전히 편성 규모는 1조2,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여야가 당초 정부의 재해예방용 비상금을 억눌러온 명분은 불필요한 예산의 거품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비비로 수조원씩 매년 편성해놓고 제대로 집행도 안 한 채 불용액으로 처리해온 관행을 고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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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는 예비비 삭감의 순수했던 의도가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여야가 지역구 민원을 반영하는 '선심성 예산' 파티로 늘어난 정부지출 증가를 감추기 위해 애꿎은 정부 비상금을 줄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적자를 줄이라고 했더니 정말 문제가 되는 사치성 지출은 안 줄이고 만약에 대비해온 보험을 깨서 지출을 줄이는 격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도 "지난달 20일께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가) 올해 정부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를 완료하고 나니 8조원 정도가 정부안보다 더 늘어났다"며 "아무래도 각 지역구 민원 예산 등이 포함된 영향 때문인데 이를 예산결산위원회가 10여일 만에 줄이려다 보니 각 당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고 덩어리가 큰 예비비 삭감폭이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처럼 과도하게 재해대책 예비비를 억제했다가 예상보다 피해보상 규모 등이 커지면 결국 모자라는 돈을 나랏빚을 내서 보충(추가경정예산 편성 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AI, 구제역, 태풍·수해'의 재해가 겹치는 퍼펙트스톰(여러 악재가 겹치는 현상) 우려다. 구제역과 태풍 등이 겹쳤던 지난 2002년의 경우 재해대책 예비비로 무려 4조7,888억원에 이르는 돈이 지출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AI의 경우 아직까지는 우리 부의 자체 예산 내에서 살처분 비용 등을 감당할 수 있지만 앞으로 전염지역이 확산되면 예비비를 끌어다 써야 할 수도 있다"며 "구제역도 오는 5월까지는 발병 위험성이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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