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구법안 대폭 후퇴부처 사전조율 미흡·이익집단 반발에 밀려
'중국의 발전속도를 감안할 때 앞으로 5~10년 내에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7월 정부가 동북아 중심국가 실현방안을 내놓을 때 각오는 대단했다. 이 계획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한국의 생존전략이며 실패할 경우 경쟁에서 낙오될 것이란 다짐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원대한 포부는 닻을 올리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욕심만 앞세웠을 뿐 부처이기주의와 이익집단의 반발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 내국인들은 외국인학교 설립 못한다
정부의 7월 계획은 파격적이었다. 경제특구는 외국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개념을 밑에 깔고 있었다.
이 점에서 경제특구 내에서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외국인학교를 자유롭게 세울 수 있다는 골격은 관심을 집중시켰었다. 그러나 당초 우려대로 파격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15일 국무회의에서 내국인은 경제특구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 자격요건에서 슬그머니 제외시켰다. 교육부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제특구 내에서만큼은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교육을 실현해보겠다던 정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 휴일ㆍ생리휴가만 무급 적용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월차휴가ㆍ생리휴가 규정을 아예 적용하지 않겠다던 계획도 크게 수정됐다.
이날 정부가 내린 결정은 월차 유급휴가 적용은 배제하고 휴일과 생리휴가의 무급규정만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도 불안하다. 노동계의 반발이 쉽사리 누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외국인 근로자 규정도 후퇴
우리나라에 파견된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규정도 크게 바뀌었다. 원안은 파견근로자의 업종과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규정을 아예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경제특구 내 외투기업들은 현행법에 구애받지 않고 동남아의 싼 인력들을 마음대로 들여다 쓸 수 있게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파견업종을 확대하고 파견기간은 연장이 가능하다'는 선으로 크게 후퇴했다. 겉으로는 크게 바뀐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약 경제특구에 입주한 외투기업이 파견근로자를 정해진 업종 외에서 쓰려고 할 때나 종료된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경제특구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 말로만 경제특구될지 우려
경제특구안의 내용이 시작도 하기 전에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은 정부의 탓이 크다. 워낙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각 이익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의 조율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더구나 정권 말기임을 감안하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경제특구안은 말 그대로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경쟁상대로 지목했던 중국(상하이)ㆍ싱가포르ㆍ홍콩ㆍ타이완은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설익은 계획으로 소모전에 매달려야 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이 계획이 잘 실행되려면 이해당사자들을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 보다 현실적인 비전을 심어줘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