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불공정거래 기업에 피해액 3배 물려야"

■中企 '상생협력' 방안<br>SSM 확산등 中企영역 침해 막을 제도 도입<br>전속고발권 주체도 공정위 이외로 확대 필요<br>중앙회, 주요 현안 조만간 정부에 공식 건의키로


상생협력 위한 중기 현안 점검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업체인 B사의 P사장은 요즘도 억울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 지난 2008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수자원을 이용한 냉방시스템’을 고스란히 거대 기업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올 초 시설견학을 나왔던 대형 공기업 H사는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기술 제안서나 견적서를 내줄 수 없다는 B사를 “특허 출원 중인 기술이라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설득해 설비도면 등 자료를 고스란히 넘겨받은 뒤 연락을 끊었다. 그로부터 수 개월 뒤, P사장은 H사가 이미 해당 기술을 이용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H사측에 민원을 제기하자 돌아온 답은 수의계약이 특허 출원단계가 아니라 등록 완료 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H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상생협력’의 구호의 이면에 버젓이 자행되는 이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중소기업계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납품단가 현실화와 기술탈취,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영역 진출 등에 이번에야말로 쐐기를 박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각종 현안과 정책과제를 조사, 정리하느라 한창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일 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의 중기 대책 발표에 앞서 대ㆍ중기 상생을 위한 주요 현안을 취합해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기업체들이 최우선으로 꼽는 정책 과제 중 하나는 H사의 경우처럼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특허를 빼 내거나 불공정한 거래행위로 중소기업에 피해를 입힌 대기업에 대해 피해액의 3배에 달하는 손해배상액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다.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이날 중앙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해도 대기업은 정부에 벌금만 내면 끝인데, 피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피해 당사자의 억울함을 덜기 위해 피해자가에게 손해배상을 해 주는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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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는 또 기업형 슈퍼마켓(SSM) 확산 등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침해를 막기 위해 실행 중인 사업조정에 대해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 보완을 요구할 전망이다. 사업조정제도는 중소기업의 경영을 악화시킬 우려가 클 경우 대기업이 일정 기간 동안 특정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당초 2년이던 사업진출 유보 기간은 지난해부터 3년에 한 차례 연장 가능해 최장 6년이 보장돼 있지만, 중기업계는 이 기간 제한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및 현행 납품단가조정협의의무제 하에서는 조합에 협상권을 위임하는 방안 역시 중기업계가 끊임없이 요구해 온 정책과제 중 하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여부 역시 업계의 주요 현안이다. 전속고발권이란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한 검찰 고발을 공정거래위원회만 할 수 있도록 한 제도. 하지만 그 동안 대기업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중기업계 일부에서는 전속고발권 존폐 여부가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다. 이에 따라 중기업계에서는 공정위에만 국한된 고발 주체를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중앙회 등 제3자에게 고발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불공정거래 대기업에 대한 ‘채찍’과 함께 공정거래 관행을 유도하기 위한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회 관계자는 “어음결제 관행을 없애고 상생협력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엄격하게 근절하는 것과 함께 현금결제 등 공정한 거래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혜택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현금결제 대기업에 대해 정부가 세제 등의 혜택을 제공해주도록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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