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형 경쟁력'을 구축하라] <2부-1> 현대차

초일류 품질… '글로벌 톱5' 눈앞<br>미국·중국·인도 등지 생산거점 구축 완료<br>日·中저가공세 극복, 차세대차 개발 과제




지난 2001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주행시험장. 회사 로고도 없이 창문을 제외한 전체가 갈색천으로 뒤덮인 차량 두 대가 나란히 바람을 가르며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운전자가 차종을 식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차량시험을 하는 이른바 ‘브라운 백 챌린지 테스트(Brown Bag Challenge Test)’. 현대차의 ‘EF쏘나타’와 일본 도요타의 ‘캠리’가 대상 모델이었다. 당시 쏘나타는 미국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반면 캠리는 인기모델로 자리잡고 있었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현대차 미국법인(HMA) 관계자들은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고 한다. 결과는 의외였다. 당시 테스트 참가자 528명 중 354명이 쏘나타의 손을 들어줬다. 가시성과 제동성, 인체공학, 핸들링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후한 평가가 내려졌다. 한때 ‘싸구려 차의 대명사’였던 현대차가 ‘품질 제일주의’의 원조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이었다. 현대차는 이를 기점으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 2005년 자동차 업계의 ‘글로벌 톱 10’의 브랜드에 올랐고 지금은 도요타가 가장 두려워 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글로벌 톱5’를 향한 진군=“미국에서의 주요 경쟁업체는 혼다와 닛산, 현대차 등이다.이 가운데 현대차는 가장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는 경쟁 대상이다.” (푸노 유키토시 도요타 미주법인 회장) 현대차가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시장에서 일궈낸 성과는 ‘기적’이란 찬사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다. 자동차 품질은 이미 미국 JD파워가 연초 조사한 ‘신차품질조사(IQS)’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일반브랜드 ‘톱‘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 역시 중국과 인도, 미국은 물론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거미줄 같은 생산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터브랜드 평가에서는 35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기록하면서 세계 84위, 자동차 메이커 중 9위의 자리에 올랐다. 한 때 꿈으로만 여겼던 ‘글로벌 톱5‘의 자리가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의 이 같은 성공은 ▦최고의 품질 ▦경쟁력 있는 가격 ▦넓은 범위의 모델을 기반으로 한 넓은 범위의 고객보유 등으로 대표되는 ‘도요타의 글로벌 전략’이 모델이 됐다. 도요타가 세계 초일류의 반열에 오른 과정과 강점을 ‘내 것’으로 소화해 수용하면서 한발 한발 따라 잡은 것이 오늘날 오히려 ‘가장 두려워 하는 적’으로 삼게 만든 가장 큰 배경이다. ◇글로벌 전략‘따로 또 같이’=현대차가 글로벌 메이저 시장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공격적 ‘정면승부’ 전략 역시 도요타가 걸었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한 품질’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현지화’가 그 핵심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심장부인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지으면서 ‘글로벌 메이커 도약’의 첫 걸음을 뗐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 왔다“며 한껏 자신감을 표했다. 유럽시장 역시 다르지 않다. 오는 2008년 연산 30만대 규모의 체코 노소비체 공장의 완공을 계기로 올 하반기 완공 예정인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과 더불어 유럽 본토 메이커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럽 생산벨트가 형성되면 중국과 인도 등을 포함, 지난 2000년부터 추진해 왔던 주요 권역별 해외생산 거점의 구축의 밑그림이 완성된다”며 “양적인 ‘글로벌 톱5’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의 ‘글로벌 베스트’를 통해 메이저 시장 곳곳에서 글로벌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역시 여전히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도요타는 오는 2010년까지 연간 생산량 1,000만대 돌파를 목표로 중국과 인도, 프랑스, 미국 텍사스 등에 새 공장을 짓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는 추가 생산거점 확보를 통해 보다 많은 수요를 창출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두려운 존재로 추격해 오고 있는 현대차를 방어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변화의 변곡점”…초일류 길목의 과제=이제 겨우 초일류 문턱에 들어선 현대차나 이미 월드 베스트의 반열에 오른 도요타 모두 앞날을 무작정 낙관하기는 어렵다. ‘좋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대차 역시 글로벌 초일류를 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더 이상 시장을 장악할 곳이 없는 일본 메이커들이 오히려 중저가 모델을 앞세워 신흥시장을 치고 들어오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메이커들 역시 머지 않아 세계 곳곳에서 정면 대결을 펼칠 태세다. 전문가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더 높이기 위한 고급차 개발, 친 환경차 등 차세대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개발 등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또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해 진 노사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커다란 숙제”라며 “(글로벌 무대를 개척하기 위한) 힘을 스스로 분산시키고 있는데 이를 한 곳에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도요타 역시 현대차 등 후발주자의 무서운 추격과 함께 급속한 해외생산 거점 확대로 인한 품질문제 등의 고민에 직면해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하반기 150만대에 달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리콜을 실시했다. 당시 도요타 안팎에서는 “해외공장 근로자들이 도요타 특유의 생산 및 관리방식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도요타가 최근 철저한 품질관리와 국내 생산강화를 통한 내수시장 방어를 부쩍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권성욱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원은 “글로벌 메이커들조차 어느 한순간 방심하거나 오판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장의 냉엄한 현실”이라며 “현대차가 초일류 문턱에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한 상시 대응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현대차 - 도요타 '쫓고 쫓기는 관계' 현대차 맹추격하자 도요타 위기감 팽배 직원 극비 한국파견, 품질 비결등 캐물어 상대 강점 벤치마킹, 글로벌 경쟁력 강화 #1.지난해 4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서 열린 품질회의. 정몽구 회장은 이날 임원들에게 도요타의 '렉서스430'모델을 분해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준비 중이었던 신형 그랜저(프로젝트명 TG)와 렉서스430의 외관과 내부 디자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면밀하게 비교한 뒤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현대차 안팎에선 이에 대해 "현대차가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 등을 앞두고 품질경영의 눈높이를 '품질의 대명사' 도요타 수준 이상으로 높여 잡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2. 2004년 9월, 도요타의 해외사업 기획 및 마케팅 담당자들이 극비리에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자동차공업협회와 산업연구원 등 자동차 관련기관들을 방문해 현대차의 품질 향상 배경과 원가 경쟁력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방식과 리더십, 글로벌 확장전략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질문을 던졌다. 도요타의 방문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자동차평가기관인 JD파워가 "현대차 EF쏘나타의 초기 품질이 도요타를 앞섰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다. 한 쪽에선 "못 쫓아갈까 애가 탄다"며 말하고, 다른 한쪽에선 "쫓아올까 두렵다"고 말한다. 아니 적어도 현대차는 이제 신차 품질수준에서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을 넘어 추월까지 염두에 둘 만큼 성장했다. 데니스 쿠네오 도요타 북미법인 선임 부대표는 이를 두고 "우리는 늘 백미러를 통해 경쟁자를 지켜보고 있다"며 "그 중에서도 현대차는 우리를 가장 빨리 추격해 오는 존재"라고 잔뜩 경계를 표했다. 이 같은 발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코 우리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평가했던 현대차를 '잠재적 도전자'가 아닌 '진정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솔직히 실토한 셈이다. 현대차의 무서운 추격을 바라 보는 도요타의 다급한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뉴욕 비즈니스 뉴스'는 얼마전 "도요타의 중역들이 자사 부품공급 업체들로 하여금 현대차에 납품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다. 도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간판 모델인 신형 쏘나타를 견제하기 위해 2007년형 캠리를 지난 3월 서둘러 내놓는가 하면 옛날 모델인 2006년형 캠리의 경우 대당 4,000달러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무서운 추격자' 현대차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 임원실에는 매일 아침마다 세계 각지에서 외신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온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담은 보고서가 올라간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곳은 역시 도요타다. "강점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배우면서 따라가고,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 허를 찌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메이커가 현대차를 '눈엣가시' 처럼 여기고 끈질기게 견제해왔다"며 "우리로서는 이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려는 노력 자체가 글로벌 문턱을 향해 다가서는 또 하나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정상범 팀장(산업부 차장)·이규진·이진우·김성수·김현수·김홍길·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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