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삼성 8천억 헌납 '왁자지껄' 논란만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 사재를 포함한 8천억원의 무조건 사회헌납 등의 '2.7 국민여론 수렴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났으나발표된 '대책'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이런저런 논란만 가열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고 여론의 압력도 가중돼 삼성은 하루속히후속대책을 내놔야 하는 형편이지만 '아이디어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기대했던만큼 여론은 우호적으로 돌아서지 않고 있는 반면 그룹 지배구조를 둘러싼 어려움은 오히려 더해져 삼성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논란은 커지는데 해법이 없다 = '2.7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8천억원사회헌납 발표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잔치에 던져져 트로이 전쟁의 빌미가 됐던'파리스의 사과'에 비유할만하다는 이야기가 재계에서 나돌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쓰인 이 사과를 그리스의 가장 유력한 세 여신이서로 차지하려고 다툰 것이 결국 당시 문명세계의 최대 전쟁으로 이어졌듯이 삼성의헌납발표는 본의 아니게도 우리 사회가 지닌 가치관의 차이와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삼성의 발표 후 8천억원의 용처와 운용주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가 절차를 관리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했으나 이런대통령의 언급조차도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더욱 격렬한 논란을 벌이는 계기가 됐을 뿐 명쾌한 '교통정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삼성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8천억원의 용처와 운영주체 등에 관한 '논의절차 관리'를 총리실과 정책실이 협의하라고 지시했음을 들어 "곧 총리실이나 정책실 쪽과협의 창구가 마련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 기금의 용처를 두고 온갖 주장이 난무해 이에 관한 방향이선 이후에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측으로부터 원망을 듣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 아이디어를 발굴하라 = 또다른 핵심 대책 가운데 자원봉사 확대와 중소기업지원에 관해서는 '산뜻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이 삼성의 고심이다. 사실상 '2.7 대책' 발표 이전에도 삼성이 자원봉사와 중소기업 지원을 해오지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삼성은 이미 규모 면에서 국내최대의 자원봉사 그룹이자중소기업 지원 재벌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규모의 확대보다는 온국민에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참신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삼성은 판단하고 있으나 각론으로들어가면 말처럼 쉽게 구체적인 대책이 도출되지는 않고 있다. 삼성은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그룹 자원봉사단장인 이해진 사장이 "자원봉사 확대를 위해 계열사별로 아이디어를 도출할 것"을 주문했으며 이에 따라 각 계열사는사별 특징에 맞는 자원봉사 확대안을 준비중이다. 재계에서는 '2.7 대책' 발표후 첫 후속대책으로 이 사장이 자원봉사 확대방안을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으나 이처럼 '아이디어 취합'이 늦어지면서 언제 그룹 차원의 발표가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중소기업 지원 역시 '아이디어'가 빈곤하기는 마찬가지. 더구나 환율하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자금사정에 여유가 없는 계열사들도 많고 '비상경영'을명분으로 오히려 납품단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그룹이 적지 않은 재계 전체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실정은 삼성의 중소기업 지원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삼성의 경영을 비판, 견제하는 기구가 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은 인선이 쉽지 않다. 삼성 관계자는 "누가 보더라도 삼성의 비판자로 적격이라고 인정할만큼의 '선명성'과 함께 '중량감'도 갖춘 인사를 선정해야 하는데 막상 이런 분을 모시려 하면고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 진전도 없지는 않다 = 삼성이 표명한 공정거래법 위헌소송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관련 증여세 부과 취소 소송 등 2건의 대정부 소송 취하 절차는 완료됐다. 또 법무실 분리와 구조조정본부 축소도 필요한 행정적 절차와 인사를 마무리했다. 구조본의 경우 150여명에 이르던 인력이 지난 1월말 98명 선으로 축소됐다고 삼성측은 설명했다. 금융계열사의 투명화에도 일부 진전이 있었다. 삼성카드는 지난 7일 개최된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인 원정연 한양대 교수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함으로써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다. 삼성카드는 또 7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을 사외이사로 채워 이사회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겠다는 삼성그룹의 약속도 실천했다. 삼성 관계자는 "다른 금융계열사들도 앞으로 주총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이와같은 경영 투명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한 숙제 =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른 '2.7대책'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현 지배구조와 경영권 상속을 용인하는 국민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조짐은 아직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현 지배구조의 해체 또는 대혁신을 도모하거나 '오너 경영'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권 상속에 관해 "자본주의의 근본 원칙은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해 이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까지 통과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이나 이달말 삼성에대한 적용여부가 판가름되는 금융지주회사법 등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은 날로강화되고 있다. 금산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고 어느 정도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결산보고서 심사결과 이 업체가 금융지주회사로 규정된다면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에는 큰 변화가 초래될 것이 분명하며 삼성전자 등핵심 계열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 일가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그룹 핵심계열사 보유지분을 늘리기는 커녕 '2.7대책'의 이행을 위해 이미 갖고 있던 지분마저 처분해야 할 형편이다. 삼성그룹은 현 지배구조와 '오너 체제' 유지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개편이나 일부 계열사의 매각과 그 자금을 통한 현 소유주의 지배권 강화 등 가능한 모든방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경영을 잘해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최선의 경영권 방어라는 원론적 입장밖에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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