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0년대 들어 자타공인의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을 보유하고 있고, 반도체와 각종 전자제품 생산과 판매량에서도 글로벌 수위를 다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글로벌 ICT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가 여전히 변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동안 세계 ICT 업계에서 꾸준히 위상을 강화하긴 했지만, 정책 주도국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던 것이다.
한 산업에 있어 일개 강국과 주도국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ICT 강국' 한국이 지금까지 선도국가를 추종하며 이익을 취해 왔다면, 이제는 산업의 리더가 돼서 ICT 산업 최전선에서 글로벌 표준을 정하고 각 나라의 롤 모델이 돼야 하는 순간이 왔다.
오는 10월 20일부터 11월 7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2014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 ICT의 글로벌 위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ITU 전권회의는 4년마다 대륙을 순회하며 3주간 개최된다. 때문에 'ICT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ICT 정책에 대해 전권을 부여받은 193개 회원국 장관급 대표가 모여 지난 4년간의 사업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 4년 동안의 정책과 예산, 헌장·협약 개정, ITU 고위 집행부와 이사국 선출 등 많은 일을 결정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의장국을 맡게 된 이번 전권회의는 도약의 중요한 디딤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글로벌 ICT 정책과 전략 방향을 선도하며 명실상부한 ICT 주도국으로 거듭날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국은 지난 1989년 첫 이사국 진출 이후 내리 6선을 했지만, 아직 고위 선출직 등은 배출조차 못했다. 그러나 이번 ITU 전권회의에서 우리 ICT 역량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상상 이상의 도약도 가능하다. 기나긴 가난의 터널을 뚫고 작은 변방국가에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강한 역동성을 앞세워 소득 2만 달러의 강소국으로의 도약을 천명했던 2002년 월드컵 개최와 같은 큰 성공도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994년 교토에서 ITU 전권회의를 연 일본은 이후 전 지역에서 전자산업의 중흥기를 맞았다. 차기 전권회의가 열린 1998년에는 ITU 사무총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2006년 전권회의를 개최한 터키는 43년 만에 ITU 이사국에 복귀한 것은 물론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도 얻었다. 2010년 전권회의가 열린 멕스코 과달라하라는 대외적인 인지도 상승으로 멕시코 제2의 도시로 발돋움했다.
우리 정부도 이번 ITU 전권회의를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해 한국이 전 세계 ICT 리더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ITU 전권회의는 미주, 동유럽, 서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등 5개 지역을 순회하며 개최되는 데 앞으로 중국, 인도, 호주 등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개최지로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다시 의장국을 맡으려면 최소 80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번 회의에 193개국 장관급 인사 150여명을 포함해 약 3,000여명의 정부대표단이 참석하고, ICT 관련 기업과 전문가ㆍ국내외 일반 참관객 등을 합쳐 약 30만 명이 참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2010년 멕시코 전권회의에는 174개국에서 장·차관급 131명과 대사 50명, 일반참가자 2,378명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는 직접적 경제효과와 부산지역 관광증가로 인한 파급효과, ICT 강국 브랜드 효과 등 모두 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미래부는 ▲정책 주도력과 외교력을 동시에 갖춘 스마트파워 강국으로서의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 ▲기업ㆍ우수 인력의 해외 진출 도모 ▲ICT 선도국가로서의 자긍심 고취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균형발전 촉진 등을 주요 효과로 꼽았다. 김용수 ITU 전권회의 준비기획단장은 "ITU 전권회의에서는 미래 ICT 비전을 제시할 정보통신분야 방향과 트랜드가 결정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개최국으로서 이를 주도하는 국가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ICT 융합, 사물인터넷(IoT) 촉진 등 한국이 주도하는 의제가 생겼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기존 전권회의에서는 우리가 주도해 채택된 의제가 거의 없었다. 해당 분야 국제표준화 작업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IoT 촉진은 ITU 차원에서 처음으로 제안된 IoT 관련 결의안으로 우리나라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IoT 활성화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최종 결의안으로 채택만 되면 국내 산업을 들고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있다. ICT 융합의 경우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내용으로 창조경제와 연결 시킬 생각이다. 김 단장은 "2014 ITU 전권회의를 계기로 우리의 창조경제 모델을 세계에 전파하고, ICT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한 의제를 전략적으로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