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노후 대책을 주로 국민연금과 퇴직금에 의존하는 나라들에게 미국의 기업연금제도인 확정갹출형 연금, 일명 401(k)은 연금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의 공적 연금제도는 최소한의 보장만 할 뿐 기본적으로는 각 개인이 스스로의 책임 아래 노후 대책을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재 약 13조8000억달러로 추정되는 미국 연금시장 가운데 10조달러 이상은 기업연금이 충당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와 유럽 각국 기업들이 퇴직 후 받을 금액을 정해놓고 여기서 매월 불입 금액을 역산하는 '확정급부형'제도를 택하고 있다면 미국의 401(k)는 연금 운용방식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확정갹출형'. 이직이나 회사 존폐와 상관없이 연금이 보장되는 반면 운용 실적에 따라서 연금 수령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제도보다도 개인의 책임이 중요시된다.
미국에서는 지난 80년 당시에만 해도 개인 연금의 대부분이 확정급부형으로 운영됐지만, 401(k)제도가 등장하면서 지난 98년에는 확정갹출형으로 지급되는 연금 자산이 확정급부형을 앞질렀다. 확정급부형 연금 수령자는 절정기의 3,000만명에서 2,300만명으로 줄어든 반면 확정갹출형 연금은 2,000만명이 채 안되던 수준에서 두 배 이상 뛰어올라 5,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도 지난해부터 미국식을 답습한 기업 연금제도를 도입ㆍ시행하고 있다. 60~80세의 노년기를 국민연금에만 의존할 경우 최소 생활을 영위하는데도 2,600만엔이 부족할 것이라는 한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국민연금만으로는 국민들의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인식 하에 보완책을 세운 것이다.
문제는 연금 운용 실적에 따라선 적립 원본을 까먹을 수도 있어 자칫 지불액보다 연금 수령액이 적어질 수도 있다는 점. 노후자금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그만큼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엔론에서 시작된 일련의 기업 스캔들 및 주가 폭락사태는 확정갹출형 연금 지급방식의 불안정한 단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엔론 직원이 연금자산의 절반 이상을 자사 주식에 투자, 회사 몰락과 함께 직원들의 노후 자금 대부분이 공중으로 증발해 버리는 사태가 초래된 것. 주가 하락으로 연금 자산이 타격을 입는다는 일반론을 예전부터 인식이 돼 왔지만, 자산이 자사주로 집중투자되고 있는 대기업 직원들의 현실이 엔론사태 이후 새로 조명을 받게 됐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대기업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미 조사업체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프록터 앤드 갬블(P&G) 직원들이 연금 자산 가운데 94.7%를 자사주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코카콜라, 제너럴일렉트릭, 맥도널드 등도 자사주 투자 비중이 모두 70%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 회사가 잘못 되면 직원들은 일자리는 물론이고 노후의 돈줄까지 끊어지는 상황으로 몰린다는 얘기다.
때문에 일본의 경우 주가요인에 따른 자산 잠식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정 비중은 의무적으로 안정 자산에 투자토록 규정하는 등 '안전망'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