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취임한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과거 최소 한 차례 뇌졸중을 앓았으며 현재 건강상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사우디에서 나오고 있다. AP통신은 살만 국왕이 뇌졸중으로 이미 왼팔의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전했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의 사이먼 핸더슨 이코노미스트는 CNN방송에서 "(살만 국왕이) 알츠하이머에 따른 치매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일간지 슈피겔은 "살만 국왕이 불과 몇 분씩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상태"라며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종종 잊어버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는 살만 국왕이 23일 취임연설을 하면서 한층 커졌다. 그가 준비된 연설문을 읽는 동안 매우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고 일부 음절은 발음하기 힘들어하거나 아예 빼먹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소문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우디 왕실 등이 왕가에 대한 정보공개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피겔도 이번 소문에 대해 "(국왕에 대한) 중상모략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러면서도 "살만 국왕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살만 국왕이 국왕으로서 한 첫 번째 조치가 후계자 선임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이복동생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69)를 후계자인 왕세제로,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55)를 부왕세자로 발표했다. 사우디 왕실은 왕권을 형제들끼리 계승하는 전통을 이어왔지만 무크린의 모친이 왕족이 아닌 점으로 볼 때 향후 왕위 승계시 자국 내에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CNN은 진단했다. 살만 국왕이 이처럼 혈통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급하게 후계구도를 정리한 것은 건강 문제 등으로 불거질 수 있는 불안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게 일부 외신들의 분석이다.
사우디 왕실을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자 주요국 지도자들도 줄줄이 조문을 명분으로 현지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사우디로 향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찰스 왕세자가 24일 조문을 위해 사우디에 도착했으며 인도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박3일 일정으로 예정된 인도 방문일정을 줄이고 27일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이다.
서방이 사우디의 신임 국왕과 후계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국제유가, 대테러전쟁, 중동 인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지난해 시리아의 과격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서방 공습에 참가했지만 우방인 미국이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 핵 협상에 나서자 내심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우디는 또한 저유가에도 감산하지 않으며 미국과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는데 살만 국왕은 취임 전부터 석유정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사우디 내 언론의 자유와 여성 인권, 가혹한 사형제도 등에 대한 문제는 서방 언론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는 사안이다. 살만 국왕은 경제 측면에서는 실용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성향을 보여왔으나 사회·종교 차원에서는 전임 국왕보다 더 엄격한 이슬람교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우디 왕실은 그가 이미 10세 때 이슬람 성전인 코란을 완전히 암송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살만 국왕의 이복형제인 압둘라 빈 알둘아지즈 알사우드 전 국왕은 '왕도 신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관도 없이 베이지색의 단출한 수의에 싸여 평민처럼 일반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