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23일] 오길비


‘나이 38세. 대학 중퇴에 요리사, 세일즈맨 출신. 정보원과 농부 경험도 갖고 있음.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고소득 희망.’ 자리가 있었을까. 실패했다.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현대 광고업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남보다 좋지 않은 조건을 갖고 있던 그가 어떻게 최고로 평가받게 됐을까. 노력과 분석 덕분이다. 1911년 6월23일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인 부부의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요리를 배웠다. 고전연구가에서 주식중개인으로 변신한 부친의 사업이 망했기 때문이다. 영국에 돌아와 오븐 외판원으로 일할 때 그는 세일즈 교본으로 쓰였다는 소책자 ‘오븐 판매의 이론과 실제’를 펴낸 적도 있다. 광고 기획일을 하던 형의 조언으로 미국에 건너간 그는 물을 만났다. 조사연구회사인 갤럽의 프린스턴연구소에서 분석기법을 제대로 배운 것. 2차대전이 터지자 영국 정보국에서 근무한 후 농촌에서 지내다 광고업에 진출했을 때, 3,000여 업체가 경쟁하는 구도였지만 그는 남다른 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분석력을 이용한 창의적 광고문구로 승승장구했다. ‘시속 60마일(96.56㎞)로 달리는 신형 승용차가 내는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 정도다’라는 카피가 그를 최고로 올린 대표작이다. ‘재미없는 제품이란 없다. 재미없는 카피라이터가 있을 뿐’이라는 말을 지어낸 주인공도 1999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무수한 명구를 남긴 오길비다. 유명인을 동원해 단순한 감성에 호소하던 광고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오길비의 창의적 광고는 새로운 문화와 20세기 광고산업을 낳았다. 어쩌면 순탄하지 않은 성장기가 천재를 다듬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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