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을 닮는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이 본 서울의 첫 인상은 한강을 따라 일렬로 서 있는 판상형(板狀形) 아파트가 주는 이미지가 압도적일 것이다. 단단한 성냥갑 형태의 아파트가 고착화 한 것은 1960년 말에서 1970년대 초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과 맞물린 국가의 주택 대량 공급정책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탄생한 서울의 1세대 아파트가 최근 도시 재개발 붐을 타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오래돼 낡은 채 서울의 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해 버린 1세대 아파트에도 장점은 있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아파트 안마당인 중정(中庭), 대지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먼저 배려한 설계, 전통적인 마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건물 배치 등 지금도 돋보이는 참신하고 실험적인 건축 기법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선구적 건축성이 공개적인 논의와 평가를 거치지 않고 흉물스러운 건물더미에 묻히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는 기록의 단절이자 기술과 문화의 후퇴를 의미한다. 지난해 운명을 달리한 장림종 전 연세대 건축학과 교수와 그의 제자 박진희 씨가 10여년간 한국의 1세대 아파트들을 추적해 생생하게 엮어냈다. 책은 1958년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 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역 주변길을 따라 길게 들어선 ‘성요셉 아파트’ ‘서소문 아파트’ 등을 지나 ‘마포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사라지고 있는 1세대 아파트의 발자취를 담았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퇴물처럼 여기고 한꺼번에 없애는데 익숙해져 버린 한국사회에 저자들은 과거에 숨어있는 장점이 아무런 공론화 없이 또 사라지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또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