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올해 12월로 예정된 대선까지 고려하면 여야 어느 쪽이 수권을 하더라도 대기업 정책, 즉 재벌 정책과 관련해 내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부의 양극화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상황 속에서 정치권이 표 결집 수단으로 재벌들을 겨냥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이번 재벌개혁 논의에는 대기업 정책의 변화로 우리 기업 전반의 활력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경제 전반에 오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 재벌개혁 한목소리=민주통합당 내 '경제민주화특위'가 이날 발표한 재벌개혁 정책은 ▦재벌세 도입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부활 ▦일감 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보완 등을 주요 뼈대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은 모두 재벌로의 자본 집중을 완화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부의 양극화를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같은 재벌개혁 방침에는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지난 27일 당의 정강∙정책에 '경제 민주화 실현'을 문구화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이 방안에는 ▦출총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일감 몰아주기 폐해 방지 등 민주통합당과 유사한 재벌개혁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는 최근까지의 월가 시위에서 보듯 부의 양극화 문제가 세계적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나 소상공인 업종 침해 문제 등이 이슈화되면서 재벌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의 재벌개혁특위에 소속돼 있는 한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최태원 SK 회장 사건을 비롯해 빵집이나 커피사업 등까지 재벌들이 독식하고 있는 현 상황 때문에 재벌에 대한 배타적 시선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여야가 재벌개혁을 표의 결집 수단으로 삼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선거 앞두고 재벌정책 강도 더해 갈 것=정치권은 앞으로 자신들의 공약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재벌개혁에 대한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날 나온 '재벌세'의 경우 민주통합당 측이 이를 아이디어 차원이고 징벌적 징세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명칭에서부터 재벌들을 겨냥한 세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재계는 선거 때마다 반복돼온 이 같은 '기업 옥죄기'가 투자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지만 최근 대기업 형태에 대한 국민 반감이 높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향후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또 4∙11 총선의 남은 일정과 대선을 앞둔 당내의 경쟁이 속도가 붙으면서 정치권의 재벌개혁 정책이 강도를 더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구호만 있고 대안이 없다=여야 정치권의 이 같은 재벌개혁 논의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찬반 논란이 많다. 양극화 등 부의 형평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재벌개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다는 것이 반대론자의 논리다.
우리 경제가 수출 등 대외 의존성이 지나치게 높은데다 수출기업이 대부분 재벌기업군에 속하는 대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재벌개혁이 자칫 경제활력 전반을 침체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구호 차원에서는 재벌개혁이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으나 실제 경제운용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들은 또 일부 재벌개혁론자들이 주장하는 불균형 해소-경제구조 개선-경제 활성화의 흐름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장기적이고 대외불안 요소가 많은 현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모험적인 정책운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