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촌에 사는 모든 이들과 운명 공동체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기술과도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화두가 '독립'이었다면 우리 시대의 주제는 '상호 의존'이다. '얽힘의 시대'가 탄생했다."(물리학자 대니얼 힐리스)
미국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싱크탱크 '에지 재단'(Edge Foundation)에는'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슨, '다중지능'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 등이 포진해 있다. 이 책은 그 에지 재단이 시도한 연례 기획의 결과물이다. 에지재단 소속의 컴퓨터공학ㆍ유전학ㆍ심리학ㆍ물리학 등 각 분야 권위자 150명이 인터넷 등장으로 뒤바뀐 시대상을 조망한다. 인류는 기술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을까.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는 인류는 새로운 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한다. 진화는 복제ㆍ변이ㆍ정보선택이라는 3가지 과정에 의존하는데 인류는 현재 인터넷이라는'제3의 복제자' 를 갖게 됐고 새로운 창조적 진화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극작가 리처드 포먼은 "인터넷은 분별력 있는 사람에게는 마약을 먹이고 '멍청한' 사람에게는 안정제를 먹인다"며 오늘의 사회를 '동화 나라'에 비유한다. 또 코넬대학교 컴퓨터공학 교수 존 클라인버그는 생각을 아웃소싱하고, 지식과 정보를 사냥하는 시대에는 '컴퓨터 소양(computer literacy)'을 넘어 '정보 소양(information literacy)'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애플 컴퓨터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컨설턴트 린다 스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세계 그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는 지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온라인 삶과 오프라인 삶의 선명한 대조를 알아차리자 현실 세계가 가져다 주는 기쁨이 한층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이제 더 확고한 의지로 두 세계를 탐닉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40년 후의 미래를 전망한다. "공동체적 체외 메모리(exosomatic memory)로부터 정보를 회수하는 속도가 극도로 빨라져 개인 두뇌의 기억에 의존하는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현재로서는 생체적 두뇌가 필요하지만 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빠른 하드웨어가 개발되면 그런 기능조차 차츰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석학들간에 서로 상반되는 견해 충돌도 흥미롭다. 니콜라스 카는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글을 통해 "인터넷이 집중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갉아먹고 있는 듯하다. 내 정신은 이제 인터넷이 떠먹여주는 대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한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정보의 급류를 당연하게 여긴다"고 고백했다. 반면 케빈 켈리는 "불확실성은 일종의 유연성이다. 내 사고가 한층 더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수없이 많은 반(半)진실과 비(非)진실, 엉뚱한 진실들 속에서 참된 진실을 조합하는 능력이 더 필요해졌다"고 강조한다. 예술가 매튜 리치는 인터넷을 "무한정 뭔가를 구겨 넣을 수 있는 파일 캐비닛과 같다"고 평했고, 인터넷기업가 제이슨 칼라카니스는 오히려"아무것도 믿지 말고 모든 걸 따져라"고 권한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