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4곳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지난 6일 아침. 솔로몬저축은행 고위관계자는 "그래도 우리 회장에게 개인비리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닫았던 부산ㆍ제일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임석 솔로몬 회장도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한점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주변 지인들도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찰 수사를 기다려봐야 하지만 기대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임 회장은 구조조정이 임박하자 계열사인 솔로몬캐피탈을 의도적으로 파산시키고 수십억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직원들이 자사주를 살 때 회사에서 빌렸던 37억원을 회삿돈으로 갚아주기도 했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상황이 심각하다. 밀항시도는 물론 횡령규모가 3,000억원대에 이른다는 말도 나온다. 회사가 가진 대기업 주식을 횡령하는가 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1,500억원대의 골프장도 사들였다. 미래와 솔로몬은 '품앗이' 증자를 했다.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이 되풀이되고 있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을 들여다보면 모두 대주주들의 불법대출과 정관계 로비, 횡령이 있다. 저축은행 회장들은 경영보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저축은행은 대주주들에게 속된 말로 '나만의 왕국'이었다.
감사와 사외이사들은 견제역할을 하지 못했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엉망이었다는 뜻이다. 감독당국도 은밀히 이뤄지는 대주주들의 불법행위를 잡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겉으로는 대출서류와 회계장부가 멀쩡해 저축은행 비리가 이 정도였는지 짐작조차 못했다.
그 사이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먹잇감'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횡령할 수 있는 돈은 넘쳐났다. 예금금리를 조금만 올리면 돈은 물밀듯이 들어왔다.
역설적이지만 저축은행 위기는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배를 더 불려줬다. 연착륙을 원한 당국은 대형 저축은행에 부실 저축은행을 안겨 몸집을 키워줬다.
저축은행 대주주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할 수 있다. 특히 은행과 달리 산업자본도 저축은행을 직접 소유할 수 있다. 은행에 비해 중요도가 작았기에 대주주 적격성 판단도 2010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대주주 자격요건이 무자격자가 대거 저축은행업에 진출하는 발판이 된 것이다.
지금은 결격요건에 해당하지만 않으면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 5년 이내 형사처벌 사항이 없거나 일정 수준의 부채비율만 맞추면 저축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10년에서야 금융관계 법령 위반 등으로 1,000만원 벌금형 이상 형사처벌을 받으면 대주주에 못 오르도록 했다.
늦게나마 제도를 만든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과거 사항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소급입법이 되기 때문이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2006년 이후 164억원의 빚을 갚지 않은 채무 불이행 상태에도 저축은행 대주주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다.
◇대주주 나만의 왕국 만들어=저축은행 회장들은 은행 내에서는 사실상 '왕'이다.
대주주이기 때문에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맞지만 대출이나 투자시 모든 건을 일일이 다 직접 결정한다. 여신위원회 등을 열지만 요식행위인 경우가 많다. 회장이 "대출하라"고 하면 무조건 돈이 나간다. 임석 회장은 주식매매까지 직접 챙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모든 일을 회장이 직접 하다 보니 경영진과 이사회 등은 무용지물이다. 한 대형 저축은행에서 감사를 했던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는 이런 부분은 문제라고 지적했다가 대주주에게 "골프나 치시면서 편하게 쉬다 가시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는 과거에서도 명백히 입증된다. 신현규 토마토저축은행 회장은 지인 6명의 명의로 314억원을 대출받아 최신식 골프연습장을 인수했다.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도 7년간 고객 1만명의 명의를 도용해 1,247억원을 저축은행서 대출받았다. 이중 생활비로 쓴 돈만 254억원에 달한다. 감사와 사외이사는 무용지물이었다.
저축은행 회장들은 내부는 물론 외부의 눈도 피하기 위해 애썼다. 회장들은 현금 동원능력을 앞세워 정관계 인사들과 교분을 맺었다. 미래 등은 횡령 금액 중 상당수를 정관계 로비를 하는데 썼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솔로몬의 경우도 초선 국회의원이 솔로몬 퇴출을 위해 적극 구명활동을 펼쳤다는 소문도 나돈다.
안팎으로 자기편을 얻게 되면 저축은행은 말 그대로 땅짚고 헤엄칠 수 있는 돈벌이 대상이다. 내돈 한푼 없이 1~2조에 달하는 예금을 투자재원으로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 요건 대수술 필요= 건설사 등 산업체나 일반 개인이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금산분리 규정이 저축은행에는 적용되지 않다보니 프라임그룹 등은 저축은행을 소유할 수 있었다. 건설사 등 중소기업은 급전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 저축은행을 사금고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일반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형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등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 곳에 저축은행 경영권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당국도 이 같은 지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고위관계자는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 등 감독당국의 판단을 평가에 넣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결격사유가 없다면 인수 허가를 안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우리나라는 저축은행 대주주를 볼 때 결격사유 위주로 하는데 외국에는 정직성 등 적극적인 요건들도 많이 본다"며 "이런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법당국의 엄정한 법집행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저축은행 운영과 관련해 작은 위법이라도 저지르면 면허회수 및 강력한 사법처리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법을 위반한 저축은행은 바로 문을 닫게 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견제 업무를 제대로 못한 사외이사와 감사 등에도 일벌백계를 해야 고객돈을 제 마음대로 이용하는 사례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