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특히 강남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가치가 높게 평가됐던 수도권 신도시 '거리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KTX·전철 등 광역교통망이 발달하면서 서울 접근성이 좁혀진데다 기업 입주로 자체적인 자족기반을 갖춘 사례도 생겨나면서 외곽 신도시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서 30㎞ 이상 떨어진 광교·동탄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이 연일 상승행진을 이어가며 한때 '제2의 강남'으로 불리던 1기 신도시 분당의 자리를 위협하는 등 신도시 부동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지난 1980년대 말 주택 200만가구 공급의 일환으로 이뤄진 분당·일산 등 5개 1기 신도시는 서울 반경 20㎞ 이내에 자리 잡으면서 주로 반경 40㎞ 전후에 들어섰거나 조성 중인 광교·동탄·김포 등 2기 신도시에 비해 높은 가격을 형성해왔다. 서울 강남권과의 접근성이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멀리 떨어졌더라도 경쟁력을 갖춘 2기 신도시가 오히려 각광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광교의 경우 분양가에 2억원이 넘는 웃돈(프리미엄)을 더해 매매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에듀타운 내에 위치한 자연앤힐스테이트 전용 84㎡는 분양가가 3억8,000만원이었지만 지난해 말 6억원을 넘어서더니 이달에는 최고 6억4,000만원으로 매매가가 치솟았다. 평균 422.3대1의 '로또 경쟁률'로 화제가 된 '힐스테이트 광교 오피스텔'의 전용 77㎡ 타입은 계약 완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웃돈이 4,000만원까지 붙기도 했다.
인근 P공인 관계자는 "한달에 수십건의 거래중개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했을 정도로 광교의 인기가 높다"며 "전세로 살던 세입자들의 매매전환 수요에 인근 삼성전자 연구원 수요도 떠받치고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대표적인 '서울생활권'인 일산과 분당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전년 대비 1.18%의 상승세를 보였던 일산은 지난달 말 0.57% 하락으로 돌아섰다. 분당 역시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지난해 1월 처음 광교에 뒤처진 뒤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정자동 '분당 아이파크Ⅰ' 전용 78㎡의 거래가격이 1년 사이 4,000만원까지 빠지는 등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1·2기 신도시의 위상을 뒤바꾼 가장 큰 요인은 광역교통망의 발달이다.
당초 광교는 '제2의 판교'라는 별칭과는 달리 지난 2011년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후 부진을 거듭해왔다. 매매에 나서는 수요가 없어 첫 분양가와 같거나 오히려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반면 분당은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인기를 끌었다. 1989년 신도시 발표 이후 최초 분양가가 3.3㎡당 200만원 수준이었지만 2007년 2,070만원으로 정점을 찍으며 10배 넘는 시세차익을 거두기도 했다. 당시 초기 입주민들이 아직 편의시설이 부족한 분당 대신 강남에서 장을 봤을 정도로 강남과의 근접성은 분당의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신분당선 연장구간 개통이 확정되면서 광교에서 강남까지 30분, 용산까지 40분 내 도착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서울에서 먼 곳에 위치했다는 입지 단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판교와 광교 모두 기반시설이 좋지만 판교는 강남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일찍부터 주목 받았던 반면 광교는 소외됐던 측면이 있었다"며 "신분당선 연장으로 약점이 해결되면서 앞으로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도시 자체의 자족성도 한몫했다. 광교의 광교테크노밸리 내 벤처기업과 동탄2신도시의 삼성전자 나노시티, LG전자는 배후수요가 되고 있다. 베드타운 성격이 강했던 1기 신도시의 입주민들이 실질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서울과의 거리를 중시했다면 2기 신도시는 경제활동부터 여가·거주까지 도시 내에서 해결 가능해진 셈이다.
실제로 최근 입주가 시작된 화성 동탄2신도시 역시 전매제한이 풀린 시범단지 아파트는 최대 5,000만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이지더원'의 경우 전용 84㎡의 분양가 3억3,300만원보다 1,500만원가량 더 높은 가격의 매물이 나와 있다.
1기 신도시가 입주한 지 20년이 넘어 사실상 '신도시'의 매력이 사라진데다 주변 난개발로 쾌적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인근 신도시로 이주하는 수요도 생겨났다.
분당에서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처음 입주했을 때는 분당이 가장 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아파트와 주변 상가들이 노후화하면서 차라리 주변 신도시의 새 아파트로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1기 신도시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의 재생이 필요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