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영도의 눈물


올해 최악의 경영인을 한 명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조 회장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 무책임하고 무능한 경영인으로 지난달 청문회에 서야 했다. 청문회에 불려 나온 조 회장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재벌가 아들로 곱게 자란 그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모였을 것이다. 그는 청문회 자리에서 "설비가 낙후되고 부지도 협소해 갈수록 대형화되는 선박 수주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해고를 철회할 수는 없지만 다시 경쟁력이 생기면 해고자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경쟁력 잃으면 되찾기 어려워 하지만 청문회 이후에도 해고자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쟁력 상실에 따른 구조조정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재고용을 하겠다는 약속은 더욱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경쟁력은 현찰과 같아서 한 번 잃어버리면 되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경영이 좋아지면 해고자를 재고용하겠다'는 말은 면피용 립서비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조 회장의 죄(?)는 국내 최고(最古)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진중공업을 존립 불가능한 3류 조선소로 만든 것이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한다. 그래야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할 수 있다. 그것이 기업의 존립 이유다. 그런데 조 회장의 한진중공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이익을 낼 수도, 고용을 유지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최대 수출품목인 조선업종에서, 그것도 한때 경쟁관계였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홀로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최초의 근대 조선소로 74년 전 부산 영도에 자리 잡았지만 지난 1970~1980년대부터 새로운 설비를 갖춘 대규모 조선소가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적극적으로 대체부지를 물색하고 설비투자에 나섰다면 대한민국 조선의 역사이며 부산시민의 자랑거리였던 한진중공업은 '영도의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조 회장의 무능 이면에는 또 다른 계산이 숨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추락과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영업 시작 시점이 공교롭게 맞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쇠락을 조 회장 한 사람의 책임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노조는 그동안 회사 경쟁력 유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정책적 도움을 줬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에 대해 막무가내식으로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소리지르는 정치인들과 '조남호 회장을 처벌하라'며 거리로 나선 '희망버스' 시위대의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잘 보여준다. 아직 우리 조선산업의 위상은 당당하다. 그러나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게 자연의 이치다. 한때 세계를 석권했던 영국의 조선산업은 이제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일본 조선소들도 세계 10대 조선소에서 이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제조업 위기 미리 대비해야 한진중공업이 우리 조선산업이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댐의 붕괴도 미세한 균열에서 시작된다. '영도의 눈물'은 조선산업으로 대표되는 우리 제조업의 겨울을 예고하는 낙엽일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철학자, 종교 사상가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믿어도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믿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겨울을 대비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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