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유가상승과 소비자 체감도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유가상승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파드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사망으로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선 이후 오름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에너지부는 16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우울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왜 유가는 계속 오르기만 할까. 당초 현 고유가 추세의 시발점은 지난 2003년 하반기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의 종료며 악화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그 배경이었다. 그러나 2004년 상반기부터는 석유 수요 증가와 공급 제약이라는 석유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요인들이 가세됐다. 즉 유가상승에도 세계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수급 불균형 지속될 가능성 커 가장 큰 원인은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특수와 높은 경제성장률로 고유가 아래서도 중국의 석유 수요는 좀처럼 그 증가 추세가 꺾지 않고 있다. 더구나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석유 구매력이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석유 수요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석유 수요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증가세가 둔화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의 이 같은 현상은 소비자들의 실질소득이 늘어나 에너지 비용 지출이 과거보다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의 저가 생필품 수출로 물가상승의 압력이 상당 부분 상쇄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원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에 이르더라도 그로 인한 물가 영향은 1.0%포인트 상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둔화가 0.6%포인트라고 발표한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석유 공급의 측면에서는 여러 제약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우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추가공급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 적정 여유 능력으로 하루 300만배럴이 필요한데 현재는 100만배럴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원유뿐만 아니라 석유정제 설비 능력도 매우 취약하다. 90년대 후반부터 석유 수요가 휘발유와 경유ㆍ제트유 등 경질제품을 중심으로 늘어났으나 정제시설에 대한 투자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휘발유 등 주요제품의 공급이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고 정제 설비가 단기간만 가동되지 못해도 공급 부족을 우려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연계됐다. 생산 부문 투자가 최종 생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2년여의 기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석유시장의 수급 불안이 해소되려면 앞으로도 장시간이 필요하며 투자 지연이 계속될 경우 수급 불안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 석유시장의 수급 불균형 외에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여전히 잠복돼 있다. 이라크에서 새 정부 구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정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고 핵개발에 대한 유럽연합(EU)과 이란의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이슬람 테러 세력의 공격이 친서방정책의 이슬람국가로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석유시장을 둘러싼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지금까지의 추세와 같이 석유 가격이 단기 급등이 아니라 완만한 강보합세와 상승세로 이어진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낮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GDP에서 차지하는 원유수입 비중이 80년 9%에서 2004년 4.4%로 줄었고 1차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석유 비중도 61%에서 46%로 크게 줄어 산업 체질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영향 작아도 장기 대책 마련을 최근의 환율절상 또한 원유 수입 부담을 어느 정도 경감시켰으며 중국산 생필품의 국내 수입 증가도 소비자물가 상승압력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이 느끼는 유가 민감도는 과거에 비해서 둔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가상승이 계속된다면 산업 체질 개선이나 원화절상 같은 충격흡수 효과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고유가대책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적 사안으로 단기적 대책에 매달리기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꾸준히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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