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3리 운동」

-정경부 김준수 차장 건설현장에서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머리에 안전모, 허리에 안전벨트, 다리에 안전화를 반드시 착용토록 하는 「3리 운동」을 벌인다. 이 운동은 건설노동자의 보신(保身)을 위한 것이지만 회사의 발전과도 직결된다. 인천 신공항 건설현장에서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회사는 한달간 사기(社旗)를 조기(弔旗)처럼 내려서 매단다고 한다. 요즘 청와대에서도 3리 얘기가 자주 나온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부하직원들의 도움없이 자신의 머리로 답변하라고 주문했고, 정책이 잘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 「다리 품」을 팔아 현장에 자주 나가라고 지시했다. 또 대통령과 재벌·노동계간에 약속한 사항들이 지켜지도록 허리 역할을 잘 하라는 당부도 했다. 장관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사회가 엉망이 되기 때문에 이들에게도 「3리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대 장관들이 이같은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적이 불순했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개각때 낙점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실세들과 연을 맺기 위해 청와대와 정치권 사이를 오가며 허리역할도 열심히 했다. 그들의 「3리 운동」은 철저히 보신(補身)을 위한 것으로, 자신은 영달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부정부패와 권위주의를 낳아 국가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비단 장관 뿐만 아니라 대다수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도 만연된 현상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작년말 경제위기를 맞아 조기(弔旗)를 게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장관을 위시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의 우수한 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은 과거에는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다. 막강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허술한 정책이라도 잘 먹혀들었다. 구태여 다리품을 팔아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인 지시만 했기 때문에 허리역할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의 중앙부처는 정부조직 개편과 권한 이양, 규제완화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현저히 힘이 떨어졌다. 반면에 여야 정권교체와 유례없는 경제위기로 인해 할 일은 더 많아졌다. 더 이상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은 통하지 않게 됐고, 현장의 목소리를 제때 정책에 반영하지 않으면 실기(失機)하기 십상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한뒤 요즘들어 장관들의 현장방문이 성행하고 있다. 국회가 열리면서 관리들은 민생을 살피기 보다는 장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전시행정의 표본이며 구태(舊態)의 재연이다. 행정부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각 부처 차원의 조직적인 「신(新) 3리 운동」이 필요하다. 장·차관은 머리, 1급·국장들은 허리, 과장·사무관들은 다리역할을 각각 분담해서 맡아야 한다. 그래야만 각 부처의 기능을 살리고 제대로된 행정을 할 수 있다. 특히 장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머리를 잘 쓰면 허리도, 다리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머리」는「감투」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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