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란다] (1)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정부의 정책 집행자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정책에서 탈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제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한국의 역사를 통해 입증됐다. 시장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일부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기업이 (과거 한국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온) 재벌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장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몇몇 중공업ㆍ화학 기업들의 실패로 인해 정부는 이들의 구조조정에 또 다시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5년간 한국 정부가 구조개혁 과정에 적잖은 성과를 거뒀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모습은 지난 97년~98년 발생했던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부는 재벌들을 통제하고 이들의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결정했다.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현재 상당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정부가 은행으로 하여금 과다한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더 이상의 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고 그 기업들 중 상당수는 결국 도산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은행들의 대출 기준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힘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가장 효과적이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개입은 시장 자율성 확대라는 당초 목표와는 배치된다.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가진 유럽과 미국 등 완전한 자유 경쟁체제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구조조정 방식이나, 파산의 불가피성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 또 어떠한 기업을 다른 기업과 임의로 합병시킨다거나 거대 재벌을 여러 개의 회사로 쪼개는 일 역시 정부 몫이 아니다. 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기업 스스로, 또는 그들의 채권자들이다. 물론 이를 수행할 때에는 정부가 세심하게 밑그림을 그린 법적 규제들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법적 절차들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기관들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며, 정치적으로 최대한 독립적인 사법관들로 구성돼 있다. 이제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나가게 될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재벌과 기업들의 구조개혁 방식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보다는 특정 산업과 특정 시장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 같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기업의 파산 보호 절차와 관련, 상당수준의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기업의 파산보호 절차를 만드는 것은 개혁의 과제 중 비교적 수월한 부분에 속한다. 앞으로의 더 큰 과제는 광범위한 경제 관련 사법 및 감독 기관들과 법 전문가들이 기술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그들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한편 이들의 질적 향상과 양적 팽창을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기업들을 관리 감독하는 법적 기관들이 일정 수준 규모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일들은 그 동안 그래왔듯이 자연스럽게 정부 산하 기관에 자리잡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의 몫으로 돌아오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인들은 돈을 빌리기 위해 또다시 정치인들을 찾아오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다. <최석영기자, 김성수기자 sycho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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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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