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토론토시는 지난 해 초 도시계획안을 마련했다. 수많은 전문가가 수년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다. 토론토시는 이 계획안은 확정하는데 다시 1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은 순전히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 계획안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다.
영국에서 도시계획을 수립하는데 드는 기간은 대략 5년이다. 연구도 연구지만 관련 부서나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서 그렇다. 도시계획은 대개 5년마다 한번씩 수립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확정된 계획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5년의 시차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계획이 현실을 뒤쫓는 것 같은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사태는 캐나다나 영국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모든 나라 이른바 선진국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또 도시계획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지나친 인력ㆍ시간ㆍ비용의 투입이 통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선진국에서도 이러한 참여의 비용(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정책결정과정이 지나치게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참여를 제한해 정책결정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보자는 주장은 없다. 참여가 불충분한 가운데 결정된 정책은 정작 이를 집행하는 단계에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고, 따라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에 수반되는 갖가지 비용에 불구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지난 1970년대 이후의 일관된 흐름이다.
새 정권은 `참여정부`라고 규정했다. 새 정권은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할 것이다. 또 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매우 바람직한 방향설정이라고 본다.
다만 문제는 우리정부가 과연 참여의 비용을 감당할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두 가지의 우려되는 점이 있다. 첫째 수직적 지시문화에 익숙한 우리정부가 수평적 토론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둘째 효율성과 신속성에 익숙한 우리정부가 일견 낭비 같아 보이는 인력소요와 시간지체를 과연 인내할 수 있을까. 참여정부에 부여된 쉽지 않은 과제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이기도 하다.
<최병선(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