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저축銀 영업정지 후폭풍] '블랙 리스트' 공개가 禍 키웠나

"94곳 문제없다" 강조했지만 고객들은 '추가 조치'에 불신감


부산ㆍ대전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던 지난 17일.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10곳의 '블랙 리스트'를 공개했다. 104개의 저축은행 가운데 10곳을 제외한 94곳은 문제가 없으며 '상반기'까지 영업정지되는 곳은 없다는 얘기였다. 특히 10곳 중에서도 일부는 정상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예금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당국 입장에서는 삼화에 이은 부산의 영업정지 조치에 따른 고객들의 불안감이 업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임과 동시에 정상화 과정에 있는 곳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 괜스레 고객들이 걱정하는 일을 덜어주려 했던 것이다. 일종의 '초동 진화'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국의 이 같은 생각은 빗나갔다. 리스트를 공개한 것이 오히려 화를 키운 것이다. '리스트 공개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불러왔다. 우선 당국은 블랙 리스트에 오른 저축은행 외에 94곳만을 대상으로 "더 이상 영업정지가 없다"면서 그것도 '부실을 이유로'라는 이중 장치를 걸었지만 고객들은 '94곳'이 아닌 저축은행 업계 전체에서 추가 영업정지 대상은 없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당국이 밝힌 발언의 방점이 '94곳'이 아니라 '더 이상 없다'는 쪽에 찍힌 것이다. 이런 와중에 부산 계열의 저축은행들이 추가로 문을 닫자 고객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고 이는 당국이 문제 없다고 밝힌 5% 미만의 저축은행들에까지 대규모 인출을 불러왔다. 21일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쇄도한 부산 지역의 고객들은 집중적으로 "더 이상 영업정지가 없다고 해 놓고…"라는 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이는 당국에 대한 불신감만을 키우고 말았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나았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저축은행 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이어졌다. 당국이 행정 절차와 소송 등의 이유로 부산 계열 전체에 대한 영업정지를 한꺼번에 취하지 못하고 뒤늦게 문을 닫으면서 우량한 곳의 고객들까지도 불안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우량 저축은행은 예금이 유입되고 있다지만 상당수에서는 5,000만원 이하로 돈을 쪼개려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일부 우량 저축은행마저 어쩔 수 없이 예금금리를 하루 만에 0.3%포인트까지 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줄기에서 당국이 '추가 영업정지는 없다'면서 '상반기'를 시한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국의 신뢰도가 가뜩이나 떨어진 상황에서 하반기에 대형 저축은행이 추가로 문을 닫을 경우 그 파장은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상으로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국 입장에서는 '상반기'를 분명히 못박았지만 '94곳'이란 단어를 귀에 담지 않은 고객들이 '상반기'란 말을 기억할 리 없다는 얘기다. A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리스트 공개 전략은 본의와 다르게 당국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었다"며 "이번 뱅크런 사태는 우리 금융회사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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