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 명예회장 13주기 기일을 맞아 범 현대가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특히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일생일대의 현안을 눈앞에 두고 있어 가족 간 어떤 이야기가 오갈 지 주목된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 제사가 20일 서울 청운동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에서 열린다. 제사에는 예년과 같이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준 의원, 현정은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3세 경영자들이 모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범 현대 패밀리 중 재계가 최근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사람은 정 의원이다. 정 의원은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로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가진 현대중공업 지분을 백지신탁해야 한다. 주식백지신탁제도는 공직지가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한 경우 이를 매각하거나 대리인에게 위탁해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로 서울시장도 그 대상이다.
추후 별도의 심사위원회가 정 의원이 출마하는 서울시장 업무가 현대중공업과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정 의원은 주식을 팔거나 수탁기관에 위임해야 한다. 정 의원은 현대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만약 정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주식을 팔아야 한다면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순출자구조가 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은 그간 "주식에 대해서는 심사를 받고 따르겠다"며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위치는 이미 초월한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사정 때문에 이번 고 정주영 회장 제사가 초미의 관심"이라면서 "정 의원이 가족들에게 현대중공업 지분 및 경영권에 대해 어떤 수준에서든 설명하지 않겠는가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선친인 정 명예회장이 일군 사업체이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주식백지신탁 가능성과 향후 대책에 대해 얘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예상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최근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족들에게 빌릴 지 관심거리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3년 연속 적자로 부분 자본 잠식 상태다. 부채비율은 2011년 396%에서 지난해 말 1,397%로 높아졌다. 급기야 최근 한국신용평가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을 각각 'BBB+'에서 투기등급인 'BB+'으로 내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한 통일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과 관련해 희망의 불씨를 안고 있다. 통일 정책의 성과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사업 성과로 이어질 경우 현대그룹은 과거의 대북 사업 노하우를 통해 회생의 돌파구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가에서는 현 회장이 범 현대가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낼 지혜를 묻고 지원을 약속받을 수도 있다는 루머도 돌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제사 때 이야기가 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라그룹도 관심거리다. 재계는 최근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범 현대가가 다시 뭉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영난에 봉착한 (주)한라는 최근 KCC와 현대백화점의 도움을 받아 복합쇼핑몰 하이힐을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공사대금 미수금 1,000억원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채무 900억원을 정리하고 보증채무 규모를 520억원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재계의 이같은 분석에 대해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그간 정 명예회장 제사에서 범 현대가 가족들은 사업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제사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맹준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