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웰빙은 문화예술로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ㆍ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우리에게 선진국 수준의 문화예술 하드웨어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다. 우리 곁에는 수많은 우수한 예술가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섬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은 놀이와 구경을 좋아하고 흥을 타고난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은 생존, 출세, 경제적 성공을 위한 치열한 일상에 갇혀 있다. 우리가 현실의 장벽과 마주하면 그 속에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고 대중문화 속에서 지치도록 망각을 추구하거나 TV 드라마의 그럴듯한 비현실을 꿈꾸고 흉내내려 하기도 한다. 지친 삶에 신선한 공기 역할 현실과 한걸음 떨어져 있는 예술을 통해 본질적인 자각이나 새로운 힘을 얻거나 공동체적인 의식을 회복하며 건강하게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근자에 일어난 수많은 어이없는 사고들은 물질적인 성장만큼 공동체사회의 의식이나 문화가 함께 성장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최악의 가난을 각오하면서까지도 공연예술에 인생을 던진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에서 가치를 찾아내고 우리 안에 감춰져 있는 아름다움과 추함,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삼켜버린 인간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무형의 것들을 찾아 무대에서 보여주며 관객과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산다. 인간과 사회의 미ㆍ추를 생경하게, 또 집중해보게 함으로써 각자가 자신에 맞는 즐거움과 성찰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군중이 아니라 군중 속의 개개인을 만나고 그 각자를 존중하며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공연예술이다. 그 속에는 살아 움직이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청각의 감각과 감흥이 있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힘이 공존하는 가운데 경이로운 우리의 몸이 담겨 있기도 하다. 순수예술은 일상과의 거리가 있기에 더욱 신선한 힘을 일상에 제공한다. 극중에서 결투 장면의 피를 보면 진한 느낌은 들지만 아무도 119에 신고하거나 지혈을 하려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의 배경과 극적 이면을 볼 수 있다. 실제 교통사고나 결투를 목격한 경우 공포 상태에 이르거나 격한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과 다르다. 관객들은 현실로 착각하지 않고 사실적인 효과를 통해 생생한 공감을 얻으면서 그 허구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측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희극의 즐거움에는 말장난이나 몸짓과 더불어 풍자의 통쾌함ㆍ날카로움이 들어 있고 야외공연과 전통을 계승한 공연에서는 관객과 어우러져 공연이 진행되는 흥이 존재한다. 음악과 무용은 일상과의 유사성이 더 없기 때문에 일상을 제쳐두고 즐길 수 있는 장르이다. 공연의 흐름 속에서 관객 각자가 공연 당일에 와닿는 것을 느끼며 나름대로 해석도 하고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기에 더욱 편안해진다. 다만 우리가 공연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그 즐거움과 멋ㆍ가치를 느낄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즐거움과 성찰 기회 제공도 공연예술은 일상에 지친 시민들을 더 지치게 하지도,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도 않는다. 반복적이고 위압적인 일상에 즐거움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공동체사회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공연예술 자체가 여러 다른 예술이 협력해 완성되는 것이기에 어떤 이슈를 던지지 않더라도 조화의 미를 느끼게 한다. 문화예술은 성숙한 개인주의, 사회적인 개인을 위해 우리 곁에 있다. 다만 대부분의 우리가 그것을 향유하지 못할 뿐이다. 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문화예술은 오염된 현대사회를 위한 신선한 공기와도 같다. 그것을 통해 더 건강하게 잘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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