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열린 탄핵심판 제4차 변론장에서도 고장난 레코드판은 돌아갔다 . 검찰수사와 공판, 특검수사와 측근비리 청문회를 거치면서 귀에 못이 박 히도록 들은 내용들이 또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탄핵심판 심리중 첫 증인신문이 벌어진 이날 법정에서 국회 소추위원측은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비리에 직접 연루됐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3시간 넘 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사실 외에 새로운 내용을 전 혀 제시하지 못했다. 급기야 소추위원 변호사는 검찰 신문조서를 그대로 읽다시피하다 수차례 재판부의 제지까지 받았다.
지난 2차 변론에서도 소추위원측은 구두변론을 핑계로 이미 제출한 답변서 를 줄줄이 읽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3차변론에서는 당초 제기한 탄핵 사유와는 무관한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다.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정도로 중대한 범법행위가 있다면 소추위원은 그 근거를 법정에서 낱낱이 밝혀야 한다. 왜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는지, 그리고더이상 대통령 직무를 맡겨서는 안될 중차대한 이유가 뭔지를 명명백백하게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증인신문을 포함해 4차례의 변론동안 소추위원은 당초 언론 에 보도된 추상적 탄핵사유 외에 구체적 탄핵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이 측근비리를 지시하고 개입했다면, 그 확실한 증거를 내놔야 함에도 말이다.
국가원수가 없는 비상사태를 만들어 놓고 이미 알려진 사실을 장황하게 되 묻는 증인신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수 없다. 탄핵심판 변론이 진행 되고 있는 바로 그 시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하고 있 었다. 이에 앞서 3일전 체니 미국 부통령 역시 중국을 다녀갔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엄중한 동북아정세 를 판단하고 슬기롭게 외교를 이끌어야할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는 유고 중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이 탄핵돼야 할 명확한 물증이 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소추위원은 오는 23일 대통령 측근인 여택수 씨 등을 불러 2차 증인신문을 벌이는 동시에 새로운 증인신청 등 증거조사를 재판부에 요청할 거라 한다 . 소추위원은 이 같은 행위 하나하나가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 시기를 뒤로 미루는 중대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도 소추위원이 ‘태산같은’ 탄핵근거를 내놓지 못한채 심리기간만지지부진하게 늘여간다면 국민과 역사의 엄혹한 심판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 한시가 급한 이 비상상황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도록 재판부 역시 강력한 소송지휘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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