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시험대선 하이닉스 새 선장

지난 2000년 3월 말. 외환은행은 거센 풍랑을 맞았다. 환은의 거목(巨木)이었던 홍세표 행장의 뒤를 이어 1년 2개월여 은행을 이끌던 이갑현 행장(현 삼성전자 사외이사)이 돌연 하차한 때문이다. 석연하지 않은 선장의 사퇴에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환은호(號)는 심하게 흔들렸다. 새 행장을 고르기까지 한달 넘는 시간이 필요했고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잡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책무를 떠안은 사람이 우의제 부행장. 행장 대행을 맡은 그는 후임 행장이 올 때까지 가교 역할을 튼실히 해냈다. '덕장(德將)'으로서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2년 3개월여 뒤. 그는 또 한번의 시험대에 섰다. 모든 이들이 꺼리던 하이닉스반도체의 구조조정담당 CEO(최고경영자)를 맡은 것이다. 하이닉스 사외이사로 일해 왔다지만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회사의 수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권 막바지, 원군은 커녕 '독자생존'과 '매각 재추진'을 놓고 사방에 호사가들만 득시글거리고 있다. 회사 내부는 어떤가. 새로운 이사진이 결정된 후 내부 인사의 첫 마디는 이랬다. "그 밥에 그 나물이구먼. 뭐 새로울 게 있겠어".우 CEO 내정자에겐 '은행의 하수인'이란 극한 표현까지 나왔다. 하이닉스 CEO 자리는 그만큼 모험일 수밖에 없고 그에게는 자칫 '성실'을 신조로 살아온 30년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 내정자는 채권단의 CEO 추천을 받은 뒤, "마지막으로 알고 몸을 불사라 하이닉스의 정상화를 위해 일하겠다"며 각오를 피력했다. 하지만 의지 뒤편에는 소액주주 등 이해집단의 반발이 도사리고 있다. 이달 하순이면 하이닉스의 새로운 진로가 설정된다.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에 대해 '원군'은 아니더라도 '감시자' 역할을 하는 국민은 여전히 많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후덕하면서도 치밀한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고 가닥을 잡아 우리 경제의 큰 짐을 덜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영기<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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