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고지도의 숨겨진 매력


지금은 스마트한 시대다. 각종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공간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을 접하며 살아간다. 특히 교통수단별로 다양화된 지도에 덧대어진 증강 정보는 지도가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만이 아닌 복합적인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지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처럼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였지만 마치 공중에서 세상을 한눈에 바라본 것처럼 평면도상에 그림으로 그려서 지도를 제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존경심을 넘어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점과 선을 연결해 지역의 특색에 맞게 채색을 하는가 하면 당대에 유행했던 의상이나 종교, 세계관, 도시의 모습까지 지도안에 담았다.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을 대하듯이 가슴속 저변에서 밀려드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과거·현재 동·서양 간극 메우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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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동서양의 차이'란 주제의 다큐멘터리 방송을 흥미롭게 시청한 기억이 난다. 동서양의 차이는 자신과 세상을 바로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서양인이 보는 세상은 각각의 개체가 모여 집합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반해 동양인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창과 같은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동서양의 관점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매체가 지도다. 지도는 나를 주체로 삼아 주변과의 관계와 의미를 함께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자 예술이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은 하나의 세계를 건립하면서 대지를 설립한다"고 말했다. 예술작품은 어떤 의미나 가치를 보여주려고 하는 동시에 그것을 감추려 한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작가에 의해 규정화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만나는 사람의 안목과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다. 바로 이러한 속성은 고지도에서도 적용된다. 그 지도가 그려지고 유통되던 '그 시대'와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가 공유되는 교차점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4월 경희대 혜정박물관은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갤러리 MI에서 '아름다운 세계고지도'전을 가졌다. 박물관이 소장한 아름다운 고지도 30여점을 엄선해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한일 양국의 모습과 그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지도가 보여주는 기록적인 자료의 의미를 넘어 고지도의 미적 감동을 통해 예술성을 탐색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일본지도 결정적 영토 증거도 담아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원한 시기에 이런 행사를 일본에서 갖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고지도를 연구하는 학자에서부터 그림을 애호하는 문화인 등등이 행사장을 찾아왔고 전시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며 입을 모았다. 아름답게 채색된 고지도는 관람객에게 소리 내어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안목과 상상력을 통해 행사장에는 수많은 대화가 이뤄졌다. 전시된 작품 중 일본 지도학자가 그렸던 세계지도에는 동해를 '일본해'가 아닌 '조선해'로 표기한 작품도 있었다. '동해는 일본해가 아니다'라는 진실을 당대 일본의 최고 지도학자가 제작한 지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고지도에는 영토와 영해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논증적 자료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고지도는 침묵하지만 침묵 너머로 역사의 진실을 끊임없이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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