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의 합작증권사 설립 조인식과 일본 동경사무소 개설을 위해 지난 2월25일 출국했다가 이달 5일 귀국했다.잠깐의 기간이었는데도 귀국해보니 싱그러운 향기가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게 했다. 이미 남녘에서는 흐드러진 유채꽃이 꽃멀미를 일으킬 정도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바야흐로 새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겨준 너무 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해오면서 자칫 마음마저 황폐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처음부터 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황량함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신선하고 차분한 기분으로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되새겨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이다.
최근 언론 보도나 잡지 칼럼을 보면 온통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얽매인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어 왔고 또 이렇게 건조한 주제는 우리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화젯거리라는 사실을 필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쯤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듯 푸릇푸릇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T S 엘리어트는 「황무지」를 노래하면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핀다』고 했다. 얼었던 대지가 풀리면서 새싹이 돋고 온갖 생물들이 되살아나는, 지금은 희망 가득한 봄날이다. 봄 하면 무엇보다도 꽃과 갓 피어난 나뭇잎들이 떠오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는 낙원에는 항상 꽃이 만발하고 숲이 우거져 있었다. 꽃은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고 또 나뭇잎 무성한 숲은 풍요로움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평화와 풍요를 갈구한다. 그렇지만 그 평화와 풍요의 이면에는 차가운 한겨울의 눈보라같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는 것 같다.
겨울을 견뎌낸 씨앗이 발아하고 겨울동안 숨죽이며 봄을 기다려온 난초의 뿌리가 건강하듯, 극복의 과정이 있었음으로 하여 번영된 앞날이 약속된다는 간단한 진리에 대하여 한번쯤 깊이 헤아려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가 바로 이 봄이 아닌가싶다.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일에만 너무 매달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거니와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삼아 도약의 전기로 삼는 슬기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교훈을 이 봄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온갖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해온 우수한 민족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경제팀을 일신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그런만큼 새로운 각료의 새로운 정책은 우리 경제와 사회전반에 커다란 활력소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새로운 기분, 새로운 각오로 이 봄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의 앞날을 설계하도록 하자. 봄비가 더욱 싱그러운 3월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