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자의 눈] 당황하지 않고 사과하면 끝?


건달이 중국 음식점에 행패를 부리러 갔다가 무림고수를 만난다. 무술을 책으로만 배운 건달은 음식점 주인인 무림고수에게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매번 가로막힌다. 그래도 건달은 기죽지 않고 무림고수에게 외친다. "당황하지 않고, 인중을 빡~ 끝!" 건달의 지칠 줄 모르는 뻔뻔함(?)에 청중은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최근 이와 비슷한 장면이 국회에서 잇따라 연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인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다. 장관 후보자에 대해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세금 탈루, 군 복무 특혜,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의혹이 제기된 분야도 다양하다. 이에 대한 후보자의 답변은 보다 다채롭다. '죄송' '송구' '유감' '불찰' 등 사과의 뜻을 담은 표현이 거의 자동으로 이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후보자들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관련기사



반면 본인 잘못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장관 후보자들은 "국세청이 과세 조치를 하면 납부하겠다(세금 탈루 관련·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증명자료가 있지만 못 찾았다(군 복무 중 해외출장 관련·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머리부터 숙인다. 당장 닥친 위기는 넘고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후보자들의 '무차별적 사과'를 대하는 여야 의원들의 자세는 더욱 실망스럽다. 한 여당 의원은 정치권과 여론의 잇따른 문제제기에 대해 "사과를 한 만큼 그만 언급하는 게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야당 의원 역시 현행법 위반 의혹까지 제기된 공직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문제와 관련해 "유감 표명을 했으니 더 이상 문제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의혹에 대해 발뺌하면서 잘못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낫다. 공직 후보자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으로 흐르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사과는 책임 있는 행동을 전제로 할 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 한 해 수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며 국가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잘못에 대한 사과절차도 필수적이지만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양해가 필요하다. 허세만 가득한 건달이 무림고수와 맞설 때처럼 '당황하지 않고' 무작정 사과부터 한다고 해서 납득될 일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과 인사청문회의 모습은 엄연히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