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업이 커야 나라가 큰다] <3> 용두사미가 된 '전봇대 뽑기'

정부 "기업규제 개혁" 말만 요란…3년도 안돼 흐지부지<br>개혁 의지 줄면서 논의도 줄어<br>현실 무시·불합리한 규제 여전<br>기업들 "오히려 경영활동 위축"




지난 2008년 1월21일. 이날 아침 배달된 모든 조간신문에는 전날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도로의 전봇대가 뽑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간사단 첫 회의에 참석해 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규제와 탁상행정을 질타한 지 이틀 만에 5년 동안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을 괴롭혔던 전봇대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전봇대'는 기업규제의 상징처럼 비유됐고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광범위한 규제 개혁은 '전봇대 뽑기'로 표현됐다. 이명박 정부가 반환점을 돈 지금 산업 현장의 '전봇대'는 말끔이 뽑혀진 걸까. 답은 '노(N0)'다. 출범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봇대'가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게 재계 안팎의 판단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개혁 프로그램이 몇 년 정도 지속되자 관료사회에서 '이만 하면 됐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품게 된 것 아니냐"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 "탄력 떨어졌다"=A사는 30만평의 연구소 부지를 개발해 연구소를 만들었지만 현재 부지가 남아 있어도 증설을 못한다. 국토개발법이 바뀌어 최초 허가 당시 받은 건폐율과 용적율이 각각 3분의1과 2분의1로 대폭 깎인 탓이다. 필요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A사는 예측 불가능한 규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B사 역시 현실을 무시한 경직된 법률 때문에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다른 발전운영회사와 계약을 맺고 1만평 남짓한 대형 공장 옥상에 1.2㎿급 태양광 발전을 추진했다가 좌절한 것이다. 공장이 부분가동 중이니 라인설치가 완료되는 오는 2012년 이후에나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황당한 답을 들은 것. 대형 공장은 공장설립 완료까지 단계별 라인설치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항변해도 해당 지자체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의 규제개혁이 탄력을 잃어가는 것에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처럼 불합리한 규제들을 제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기 힘들다"며 "일선 산업현장에는 과도한 비용을 유발하거나 준수가능성이 희박한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아직도 상당수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규제 개혁을 총괄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의 회의내용을 들여다보면 재계의 이 같은 우려를 실감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했던 2008년 한해 동안 9차례 열린 국경위 회의에서 총 28개의 안건이 다뤄졌고 이 가운데 71.4%인 20건이 규제개혁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2009년 10차례 회의에서 논의된 31개 안건 중 규제개혁 부문은 절반인 16개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는 국경위 회의 자체가 대폭 감소했다. 9월까지 세 차례만 소집돼 7개의 안건이 논의됐고 규제개혁에 관한 것은 이 가운데 3개에 불과했다. 대기업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경위의 안건 내용은 물론 회의 빈도만 보더라도 올해 들어 정부의 관심사가 기업의 경쟁력보다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개혁 체감 만족도 낮아=물론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규제 개혁이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9월까지 2년6개월여 동안 규제개혁추진단은 1,252건에 달하는 규제를 개선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규제 개혁이 양적인 차원에서 만족할 만한 결실을 거뒀는지는 몰라도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만족도는 그리 신통치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월 발표한 '2010년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분석'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정부의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39.1%로 조사됐다. 현 정부 출범 당시인 2008년 2월에 기업들 79.6%가 현 정부의 규제개혁에 '만족할 것'으로 기대한 데 비하면 겨우 절반 수준이다. 규제개혁에 대한 낮은 만족도는 결국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전경련 조사에서 설문 대상 기업 중 33.7%만이 규제개혁으로 투자 촉진 등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재계는 정부에 일관성 있는 규제개혁을 바라고 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식 규제개혁은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략 수립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선거 이후 현 정부가 기업친화적 기조에서 대기업 규제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와 고용을 증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계은행이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최근 한국의 노동규제가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며 "금융이나 서비스산업의 진입장벽이 높은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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