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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의 팍팍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소통 좀 했으면 좋겠다. 회원사가 살아야 거래소도 사는 것 아닌가."
한국거래소의 밀어붙이기 식 행보에 주주인 증권·선물사가 집단 행동에 나섰다. 그동안 거래소의 일방통행 행정에 입을 다물어왔지만 업계가 장기 침체에 빠지자 주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대표 기구를 만들어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한 지 6개월을 맞는 최경수 이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거래소 주주인 36개 증권·선물사 대표 및 임원들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 모여 주주협의체를 구성했다. 초대 대표에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선임됐다. 36개 증권·선물사는 거래소 지분을 90% 가까이(지난해 12월 말 기준) 쥐고 있다.
사상 초유의 거래소 주주협의체 결성은 거래소의 불통행정에 대한 회원사들이 불만이 곪아 터진 결과라는 목소리가 많다. 그동안 거래소는 상품 도입이나 정보기술(IT) 시스템 업그레이드, 수수료체계 변경, 배당 등에 있어 회원사와 충분한 의견교환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터진 한맥투자증권의 주문사고에 대한 대응 및 후속조치다. 당시 거래소는 한맥투자증권의 미지급 결제대금 570억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회원사들이 손해배상공동기금을 통해 모든 비용을 해결하도록 해 빈축을 샀다. 당시 공동기금을 납부한 한 회원사 대표는 "이상 주문 발생 당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해 외국계 금융사가 돈을 다 빼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며 "결제대금 중 570억원을 손해배상 공동기금에서 처리한 뒤 회원사에 '알아서 다시 채워넣으라'는 입장만 반복할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올 초 급작스레 야간 코스피200선물 중개서비스를 중단한 것도 주주들로서는 불만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야간 코스피200선물 중개서비스를 '올해 안에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혀 야간선물 서비스를 제공하던 증권사를 당황하게 했다. 거래소의 중개서비스가 만료될 경우 증권사들은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직접 상대해야 해 거래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35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차세대 주문시스템인 엑스츄어플러스 도입 과정에서도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거래소의 왜곡된 소유와 경영 시스템에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한국거래소의 주요 주주는 증권·선물사 등 민간기업이지만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기형적인 구조에 거래소가 주주보다 정부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그동안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며 주주 위에 군림하고 회원사들은 거래소가 지시·통보하는 대로 따르고 있다"며 "너무 당연한 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겠다는 게 화제가 되는 것이 '비정상의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혀를 찼다.
한국거래소 측은 "그동안 회원사들과 나름대로 열심히 소통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협의체가 만들어져 난감하다"며 "향후 주주들과의 더 적극적인 소통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주주협의체는 앞으로 거래소에 대해 배당 확대도 주장할 계획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금융사 대표는 "지금 거래소가 쌓아둔 배당 적립금만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래대금 감소로 증권사는 물론 거래소의 수익도 안 좋아졌지만 지나치게 많은 배당적립금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주협의체는 36개 회원사로 구성되며 원활한 의사결정을 위해 7개사를 중심으로 한 '7인 대표주주협의회'를 별도로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