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건설사만 아는 미분양 물량

며칠 전 취재차 방문한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아파트를 사려는 듯 상담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잘 팔리고 있다는 얘기에 미분양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몇 채 남지 않았습니다. 작은 평형은 거의 다 팔렸고요. 정부의 세제혜택 수혜단지면서 분양가도 내려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미분양 모델하우스를 찾아가서 남아 있는 물량을 물어보면 대부분 상담원들은 구체적인 숫자를 얘기해주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체적인 숫자가 드러나면 미분양을 파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는 상대적인 것이라 50채는 어떤 사람에게 많지 않은것으로 여겨지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별 인기가 없는 아파트로 인식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도 3년 전 분양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미분양 판촉을 진행 중이다. 분양 직후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다는 소문에도 이 회사는 "대형만 조금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됐고 '대형만 조금 남아 있는' 이 아파트가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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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에는 미분양아파트 수(數)는 감춰야 할 정보지만 구매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분양 당시에는 해당 지역의 수급 상황과 교통 여건 등으로 일시적으로 팔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2~3년이 지나 이 아파트가 잘 팔린다면 분양 당시 문제점이 거의 해결이 됐고 아파트의 품질도 문제가 없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건설사가 미분양 아파트 수를 감추는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행위라는 일각의 지적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정부에서 건설사들의 미분양아파트 정보를 취합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의 신고에만 의존하다 보니 믿을 만한 통계는 아니다. 미분양 관련 세제혜택 정책이 발표되면 그 다음달부터 미분양아파트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도 통계의 부실을 반증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건을 팔려는 기업의 기본적인 의무다. 하물며 한 채에 수 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국내 건설사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정보는 감추기 급급하고 그로 인해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뒤 소비자들이 선택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시장경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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