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최근 ㈜코어비트의 사외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코어비트는 대표이사의 횡령 등을 은폐할 목적으로 수백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업체다. 해당 사외이사는 상당기간 회사에 출근하지도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급여는 받았지만 의무는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은 사외이사의 지위에 따른 상당한 주의를 다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돼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사외이사들에게 신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회사의 경영자 및 외부감사인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도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선 분식회계의 주된 책임을 회사의 경영자에게 물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전현직 임원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외국에서는 분식회계와 관련된 법적 책임이 우리보다 매우 높다. 규모가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엔론과 월드컴의 최고경영자(CEO)는 20년 이상의 형을 선고 받았다.
둘째로 외부감사인의 법적 책임에 대해서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1심부터 3심까지 모든 법원은 분식회계를 한 ㈜코어비트의 감사인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감사인이라고 하면 회사의 모든 부정과 오류를 밝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회계부정이 경영진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행해졌다면 이를 발견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감사인으로서 공인회계사는 부정 적발의 전문가가 아니라 회계감사기준이라는 규정을 준수하면서 이에 대해 표명하는 전문가로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부감사인의 책임에 대해서 금융감독기관과 사법부가 견해 차이를 보인 점이다. ㈜코어비트 사건에서 금융감독기관은 감사인에게 부실감사의 책임을 물어 행정조치를 내렸으나 대법원은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상장사가 도산하면 대부분의 경우 금융감독기관은 회계부정 여부를 재조사하고 담당 감사인에게 부실 감사의 책임을 물었다. 쓰러져가는 회사는 무리한 의사결정을 자주 내리게 되는데 도산 후에 부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면 이전 감사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내용이 종종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인이 회계감사기준에 따라 판단을 내린 후 의견까지 도출했다면 금융감독기관의 무리한 행정 처벌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판례는 앞으로 유사 사건의 재판 과정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과 같다. 이를 계기로 외부감사제도 역시 개선돼야 할 것이다. 회사가 감사인을 선택하고 보수도 깎을 수 있는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 감사인의 독립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사법부 및 금융감독당국이 앞으로 사후적으로 잘못된 점만 찾아 처벌하기보다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