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백년가약은 옛말… 해마다 느는 황혼 이혼 왜?

양성평등 문화 확산 속 노후에 나만의 행복 찾기 나서<br>남편 폭력·경제적 이유가 이혼 사유로 최다<br>여성지위 높아지면서 재산 분할 50%도 한몫<br>부유층선 세금 피하려 '가장 이혼' 사례도

노후 생활을 막연히 자녀를 위해 참으며 지내지 않고 개인적 행복을 찾기 위해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서울경제DB

지난달 말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 312호 중법정 앞. 40년의 결혼생활이 끝나는 자리에 아내는 있었지만 남편은 끝내 법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가정법원에 남편 대신 출석한 변호사는 원고인 아내 박모(59)씨에게 남편이 이혼을 원하지 않으며 아내가 정 이혼을 원한다면 재산의 30%만 분할해주겠다는 이야기를 간략히 전했다. 하지만 19세에 결혼해 지금까지 남편 안모(60)씨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렸던 아내 박씨는 결코 이혼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박씨는 "부모님 없이 자란 남편의 행실에 시달린 탓에 두 아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 그동안 차마 이혼은 할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큰아들(37)이 결혼해 며느리가 임신까지 했는데도 그치지 않는 남편의 폭행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눈물을 삼켰다. 박씨의 며느리는 얼마 전 손녀를 출산했다. 지난해 8월 작은아들이 30대에 이르자 박씨는 이혼소송을 내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그때만 해도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남편이 조금은 아내의 소중함을 알고 달라질 거라 기대했다"며 "하지만 이후에도 잦은 음주와 폭력은 변하지 않았고 변호사까지 선임해 지금까지 모은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남부끄럽다며 부모의 이혼을 말리던 자녀들의 모습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양성평등 문화가 확산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되면서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시작됐다. 박씨는 "아들과 며느리 역시 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는 나를 이젠 지지한다"며 "그동안 가정을 지키려 참아온 자신의 삶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인고의 결혼생활을 끝내려는 박씨에게는 시가 3억원 상당의 아파트와 그에 딸린 대출금, 아들이 남편 명의로 구입한 자동차와 같은 재산 분할이라는 문제만 남았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황혼이혼의 배경에는 이 같은 폭력 문제가 가장 크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용헌 서울가정법원장(56)은 "부유층의 경우 배우자의 사망 이후 재산을 물려 받을 때 내야 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사망한 후 상속을 받으면 자녀와 재산을 나눠야 할뿐더러 세금도 내야 하지만 황혼이혼을 택하면 대개 재산의 절반을 분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대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부부는 참기 힘든 빈곤의 무게에 눌려 노년에 궁지에 내몰린 채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황혼이혼에서 경제적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새로 시작하는 부부들은 가정생활에 대한 꿈과 계획이 있어 성격차이를 중시하지만 20~30년 함께 살아온 부부들은 돈 문제 때문에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금을 고려해 이혼을 결심하는 부유층은 정식 재판을 거치는 경우보다 협의이혼 과정을 통해 간략하게 절차를 마무리한다"며 "속칭 '가장이혼'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양성평등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혼시 전업주부가 받는 평가가 올라간 점도 황혼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20년간 두 자녀를 키우며 가사 일에 전념해온 한 여성이 배우자를 상대로 낸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비율을 50% 가까이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10여년 전만 해도 이혼시 전업주부가 받는 재산 비율이 30% 안팎이었던 것에 비하면 재산분할 몫이 늘어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황혼이혼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부부관계에서 누적된 갈등의 결과"라며 "이혼을 선택하기 전에 기존의 부부관계와 갈등에 대한 부부 각자의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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