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보유주식 백지신탁 규정은 의원 재직시 보유주식 등의 가격에 영향을 줄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 출범 이후 의원의 백지신탁 주식을 매각한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이 제도가 사실상 형해화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백지신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 여론이 높음에도 오히려 이 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하려는 태세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5월 이후 본인·가족 보유주식을 백지신탁한 의원은 7명으로 이들이 맡긴 주식은 현재까지 모두 매각되지 않고 있다. 소속 상임위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한 의원은 이를 백지신탁하고 이 주식은 수탁기관이 60일 이내에 팔도록 돼 있다. 그러나 매각되지 않으면 계속 기한을 연장할 수 있어 의원이 주식을 사실상 보유한 채 해당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좋은 예다. 그는 2012년 정무위에 배속된 후 지난해 6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때까지 정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성 회장이 굳이 정무위를 고집한 것은 경남기업에 대출 특혜를 주도록 정무위 감사 대상인 금융당국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작 제도 강화에 나서야 할 국회는 거꾸로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고 있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보면 고위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본인 보유 주식을 금융기관에 보관하고 퇴임 후 돌려받는 백지관리신탁 제도로 바뀌어 있다. 물론 현 제도가 유능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당초의 제도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퇴임 후 주식을 다시 소유하는 백지관리신탁은 자칫 제도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야는 이번 기회에 의원의 사익을 위한 상임위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을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