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6월 18일] 어윤대 브랜드

"지난 1978년 박사논문 학위심사 이후로 가장 혹독한 테스트였습니다."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15일 저녁,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면접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는 당사자가 느끼는 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주관적인 척도라는 점에서 KB금융지주 회장 직책에 대한 어 내정자 심경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의미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긴장의 강도만큼 KB금융지주 회장으로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다는 개인적 속내가 담긴 것으로도 이해된다. '학자의 습·벽' 우려 잠재워야 학자들이 관계ㆍ정치계ㆍ기업경영으로 진출하면 사람들은 예외 없이 '학자적 양심' 또는 범부들의 식견을 뛰어넘는 '탁월한 시각'을 기대한다. 명망 있는 학자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들이 상당히 많지만 학자 출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직도 '어윤대=고대 총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현재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조만간 KB금융지주 회장으로서 금융시장을 무대로 새로운 활동을 펼치겠지만 그에게서 고대 총장 출신이라는 이미지는 쉽사리 희석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어 내정자에게도 사람들의 기대는 상당할 것이다. 어 내정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30년 지기라는 점에서 힘 있는 금융 최고경영자(CEO)로서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더더욱 기대치를 높이고 있을 것이다. 학자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가운데 또 하나가 '고집'이다.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면서 남에게 조언을 듣기보다 조언을 하고, 배우기보다 가르치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저절로 형성된 묘한 '습'이나 '벽'을 학자들에게서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학문의 영역에서 학자 개인의 습이나 벽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일상사에서도 습과 벽을 고수한다면 외골수 또는 옹고집으로 치부되는 억울함을 당할 위험이 많다. 어 내정자는 100년 브랜드 '민족 고대'를 '글로벌 고대'라는 새 브랜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주역이다. 그만큼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탁견을 갖췄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에는 '고집스러울 것'이라는 검증되지 안은 평가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올해 초 이 대통령을 모신 자리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은 넘치는 의욕과 업무능력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발로지만 세간에서는 '주변의 충고나 지적'에 내성을 갖지 못한 '학자의 습이나 벽'이 아닐까 의심한다. 특히 30년 지기 이 대통령과의 우정을 모를 리 없는 주변사람들이 학자 출신인 어 내정자의 습과 벽을 '극복하기 힘든 한계'라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금융계에서는 벌써부터 한두 사람만 모여도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몰고 올 변화의 바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희망만큼이나 우려도 많이 섞여 있다. 그가 면접에서 밝힌 메가뱅크론을 놓고도 정책당국의 의중이냐 아니냐 하는 설왕설래가 많다. 풍족사회 만드는 CEO 되길 개인의 소신ㆍ식견에 대해 이리 찧고 저리 까분다고 노여워하기보다는 주변에서 어 내정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만만찮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도량을 보이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어쭙잖은 소리일지라도 주변의 목소리와 시선에 한번 더 귀를 열어주기 바란다. 어 내정자가 2시간 동안이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던 '30년래 가장 힘든 테스트'인 회추위 면접은 그래서 '학자 어윤대'가 아닌 '회장 어윤대'로의 성공적인 탈각을 위한 정(丁)질이기도 하다. 명망 있는 학자가 성공한 CEO로 변신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풍족해질 것인가를 생생하게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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