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가 제출한 2014년도 예산안을 보면 초유의 세수부족 사태에도 관행적으로 과다하게 편성한 예산이 수두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 삭감됐지만 상당 사업의 경우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반영됐다.
그러나 예산의 최종 심의권을 쥐고 있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여야 정쟁으로 심의할 수 있는 시간을 버려가며 예산낭비에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됐다.
공기업의 방만경영을 질타하는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도리어 나라 살림을 함부로 하는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효과 없는 중복 예산 수두룩=사업비가 많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창조경제'를 책임지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사업비를 편성한 점이 지적됐다.
국토부는 도로 및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예산이 부족하자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토지선보상사업이 문제가 됐다.
토지선보상사업은 민자 도로건설의 경우 국가가 토지매입을 하게 돼 있는 것을 해당 민자 도로사업자가 매입하게 한 후 정부가 이자를 가산해 보상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민자 도로사업의 토지 매입비를 민간에서 끌어들여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시작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인 사업대상이나 지원시기 및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도 이자 보상분으로 300억원을 편성했다.
문제는 국고채 금리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현재 국고채 금리가 2.83%였음에도 국토부는 5%의 이자로 계산했다.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토지도 매입하고 높은 이자까지 거둘 수 있지만 정부 예산은 불필요하게 나가게 됐다.
산업부의 해외전시회사업도 효과가 미비한 예산낭비라는 질타를 받았다.
산업부는 중소기업 등의 해외 수출을 넓히기 위해 해외 바이어를 상대로 전시회를 여는 비용 등 모두 174억7,100만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수출계약이 없는 전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1년 8.4%에서 올해 9월 현재 14.1%로 늘어나는 등 수출 효과가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부의 일본 우수 퇴직기술자 유치 사업은 중소기업청과 중복되는 면이 많다.
일본의 퇴직기술자를 국내에 초청해 체재비와 자문료 등을 지급하기 위해 15억원을 편성했는데 이는 중소기업청이 추진하는 해외 고급기술개발 인력활용 사업과 내용이 엇비슷하다.
산업부의 차세대 중형항공기 개발사업(12억원)과 핵심소재 원천기술 개발사업(438억원)은 국제 공동개발 파트너가 사업을 포기하고 원전기술 개발사업 비중이 줄어드는 등 사업목적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데도 막대한 예산을 세웠다.
◇'창조경제' 사업도 낭비=미래부의 창조경제기반 구축사업은 사실상 위원회 등 회의체를 만드는 수준에 그치는 데도 두 개 이상의 사업이 몰렸다. 창조경제 정책기획 및 조정사업은 관련 위원회와 추진본부를 구성하는 사업이고 창조경제문화추진본부 지원사업은 창조경제 민관협의회 및 실무협의회를 꾸리는 사업이다.
각 회의체에서 별다르게 차별화된 내용이 없는데도 우후죽순 격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밖에 국민참여형 아이디어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20억원을 쏟았던 미래부는 정부 홍보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함께 예산이 전액 깎였다.
예산편성권을 틀어쥔 기재부도 예산낭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재부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에 318억원가량을 편성했는데 이 중에는 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 전자정부 시스템을 수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출입은행을 통해 수출하고 관련 기업의 수출길을 도모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전자조달 시스템이나 전자통관 시스템은 각각 조달청과 관세청이 비슷한 내용으로 수출에 나서 국회는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그 밖에 감사원은 공공부채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하며 60명의 외국 전문가를 불러 1인당 만찬 6만원, 오찬 3만원 등을 대접하는 데 1,000만원을 편성했다.
공직비리 제보자 보상금 역시 지난해와 올해 5,000만원이지만 일부 불용되던 사업인데도 내년에 3억원을 편성했다가 2억5,000만원을 삭감당했다.
국회 예결특위 관계자는 "올해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세수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각 부처가 불필요한 예산을 되도록 줄이라는 압박을 크게 받았다"면서 "그럼에도 뚜렷한 근거 없이 현 정부 역점사업이라는 이유로 편성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경비를 반영한 사례가 줄지 않았다"고 꼬집었다.